미국 공연 시작한 탈북 피아니스트 김철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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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연합뉴스) 김지훈 특파원 = "훗날 김철웅이 통일을 단 10분이라도 앞당겼다는 소리를 들으면 좋겠습니다"
탈북 피아니스트인 김철웅(34) 씨가 2일(현지시간) 북한 인권의 실상을 알리고 전 세계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한 미국 내 연주회 일정을 시작했다.
김 씨는 이날 저녁 뉴욕 맨해튼음대를 시작으로 9일까지 보스턴과 워싱턴에서 피아노 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이날 연주회에서 김 씨는 모차르트의 피아노협주곡 21번 C장조 K.467 엘비라 마디간과 쇼팽의 녹턴에 이어 북한 곡인 조선은 하나다를 연주했고 자신이 직접 편곡한 아리랑 소나타도 선보였다.
그의 연주회는 단순한 연주회가 아니다. 연주곡 목록에 북한 곡을 굳이 넣는 것뿐 아니라 연주회 중간에 청중과 질문.응답 시간도 갖는다.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알리기 위해서다.
"뉴욕필하모니가 평양에 가서 미 국가를 연주했을 때 그곳 주민들이 미제라고 적대시하던 자들이 연주하는 곡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느꼈을 겁니다. 반대로 이곳에서 그들의 곡을 연주함으로써 북한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걸 이곳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그는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낙인찍어 적대시하는 미국의 심장부로 굳이 찾아와 북한의 곡을 들려주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김 씨는 평양의 고위 당 간부의 아들로 태어나 8살에 평양음악무용대에 입학해 피아노를 전공했다. 장성택 조카를 비롯한 고위층 자제들이 학급 동기였고 집에 벤츠가 있었을 정도로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모스크바 유학시절 커피숍에서 들은 팝 피아니스트 리처드 클레이더만의 곡 가을의 속삭임(A Comme Amour)은 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그런 곡은 북한에서 금지된 곡이었기 때문에 처음 들었죠. 그런 곡을 칠 수 없다는 현실에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북한으로 돌아와 애인에게 들려주려고 그 곡을 연습하다가 누군가 보위부에 신고하는 바람에 끌려가 일종의 경위서를 썼다. 그것이 탈북의 계기가 됐다.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치는데 경위서를 쓰게 하는 나라에서 못살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평생 피아니스트로 여기서 살면 도대체 몇 만장의 경위서를 써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로부터 정확히 사흘 뒤에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습니다"
연변에서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온갖 고생을 한 끝에 조선족 교회를 찾아가 피아노를 연주하게 됐고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2002년 12월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북한의 인권을 음악을 통해 알리는 것이 이번 연주회의 목적이고 제가 일생동안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북한 인권의 심각성과 현실을 전 세계에 알리고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도록 해 해결 방안을 만드는 것이죠"
그는 앞으로 활동영역을 작곡으로 넓혀 남과 북이 함께 좋아할 수 있는 장르의 음악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서로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곡을 만들어 들려주면서 음악을 통해 이질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김 씨는 여러 가지 이유로 북한이 더 이상 권력을 세습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보면서 한국도 북한의 붕괴에 대비한 대책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hoonkim@yna.co.kr

영상편집 : 왕지웅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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