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증설 들썩이는 이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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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연합뉴스) 김경태 기자 = 하이닉스 증설 반대하면 이천경제 끝장난다

경기도 이천시시내 음식점 유리문에는 이런 문구의 큼직한 대자보가 여러 장씩 붙어 있다.

시내 거리에는 하이닉스는 이천 시민의 생존권이라는 점잖은 표현도 있지만 원색적으로 정부를 비난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걸려 있다.

12일 정부가 하이닉스반도체 이천공장 증설결정 연기방침을 밝힌 가운데 이천지역 민심이 크게 동요하고 있다.

지난해말까지만해도 이 곳 분위기는 정중동(靜中動)이었다.

드러내놓고 정부에 하이닉스 공장증설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시장을 비롯한 지역 인사들이 30여 차례 청와대와 국회, 정부부처 등을 방문해 공장증설을 요청하는 등 물밑 총력전을 펼쳐왔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일 경제점검회의에서 "수도권 내 공장증설은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이후 비관적인 관측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돌변했다.

이날 이천시내는 장날이어서 거리는 모처럼 북적였지만 주민들의 얼굴 표정을 가슴에 달고 있는 검은색 리본(하이닉스 살려야 이 나라경제 희망있다) 만큼이나 어두웠다.

지난 11일 오후 상가를 철시하고 1만여명이 모여 하이닉스 공장증설 촉구 궐기대회를 가진 여진이 남은 듯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결같이 "하이닉스 공장증설만 이천의 살 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83년 하이닉스 공채1기로 입사해 98년 외환위기 때 명퇴한 이모(51.부발읍)씨는 "외환위기 전에 3만여명이던 직원이 9천여명으로 줄고 협력업체가 빠져 나가면서 침체된 경기가 아직도 회복되지 않고 있다"며 "공장증설이 돼야 인구가 늘고 그래야 상권도 회복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이닉스 재직시설을 떠올리며 "구리배출 문제를 따지는데 세계적인 기업은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면서 "반도체는 한 달마다 기술력이 달라질 정도로 시간이 곧 경쟁력"이라며 조속한 공장증설을 주문했다.

이씨 역시 노후대책으로 마련한 3개 점포 가운데 2개 점포는 문을 닫고 1개 점포에서 근근히 부인과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시내 중앙로 주변 상가들은 10개 점포 가운데 2-3개꼴로 비어 지역경기를 말해주고 있었다.

창전동 중앙로1구역 상인회 정석연(47) 회장은 "지금 이천경제는 서울 변두리의 1970년대 수준으로 보면 된다"며 "그나마 하이닉스가 있어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천에는 공장다운 공장이 없다"며 "공장은 있으나 대부분 자동화 설비를 갖춰 생산인력이 없으며 그나마 소비력을 갖춘 종업원이 있는 곳은 하이닉스가 유일한데 그나마 예전같지 않다"고 푸념했다.

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주변 부발읍 상권은 상황이 더욱 심각해 보였다.

하이닉스 정문 앞 상가 골목은 점심시간인데도 겨울 날씨만큼이나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상가임대라는 적힌 현수막이 여러 건물에 걸려 있었고 아예 오랫동안 셔터를 내린 듯한 점포도 여러 곳 눈에 띄었다.

한 대형 건물은 6층까지 골조공사를 벌이다 부도가 나면서 흉물스럽게 방치돼 있었다.

이날 점심시간에 전혀 손님을 받지 못했다는 한 음식점 여주인은 이유를 묻는 질문에 "여기 처음 와보세요?"라고 반문하며 "이번 달은 전기요금도 내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미리 신효승(51) 이장은 "아미리 일대 350개 점포 가운데 절반 이상이 문을 닫았다"며 "큰 건물일수록 2층 이상 고층은 비어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하이닉스 후문쪽 대흥리에 있는 70여개 점포 가운데 20-30개가 폐업한 상태였다.

이천에서 공장증설은 하이닉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정비계획법(공장용지면적 자연보전권역 6만㎡ 이내)과 산업집적 활성화 및 공장 설립법(공장건축면적 1천㎡ 이내), 팔당호상수원보호특별대책구역 고시 등이 생산시설 확충에 발목을 잡고 있다.

이천시가 지난해 실시한 53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기업규제 및 피해사례 조사에서 28개 기업이 각종 피해를 호소했고 이 중 18개 기업이 공장증설을 허용해달라고 요구했다.

A식품의 경우 오랜 연구개발 끝에 신맛을 제거한 새 제품을 개발해 설비라인을 증설하려다 도시형공장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공장 증설에 제동이 걸렸다.

A식품은 "공장을 당장 이전할 수 없어 매년 수출 물량이 30%씩 줄어드는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자동차 엔진제어시스템을 생산하는 외국계 B기업은 늘어나는 시장 수요에 맞춰 자동차 센서제품 생산라인을 증설하려고 했으나 공장건축면적(1천㎡ 이내)이 제한돼 사실상 공장 증설을 포기했다.

B기업은 2000년 중국으로 생산라인 일부를 이전했으며 이로인해 100명의 고용기회가 사라지고 연간 500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고 이천시 기업지원과 관계자는 전했다.

이천시범시민대책위원회 전광재(57) 위원장은 "이천 주민(19만명)의 3분의 1이 하이닉스때문에 막고 산다"며 "2010년까지 13조5천억원을 투자해 6천명의 고용을 창출하겠다는데 정부가 이를 막아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조병돈 이천시장은 이날 하이닉스가 있는 부발읍을 연두방문해 주민들과 만난 자리에서 "1990년대말 세계적인 완구업체인 레고랜드를 이천에 유치하려다 결정단계에서 비수도권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된 전력이 생생하다"며 비장한 어조로 당시의 악몽을 되짚었다.

독일투자를 선택한 레고랜드는 당시 1억5800만 유로(약 2천100억원)을 투자하고 현지에서 900명 이상을 고용해 매년 135만명 정도가 꾸준히 찾는 세계적 명소가 됐다고 이천시는 설명했다.

정부가 당초 15일로 예정됐던 공장증설 결정을 연기하면서 이천 주민들의 가슴은 더욱 타들어 가고 있다.

kt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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