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어머니의 고물상

2008-11-12 アップロード · 136 視聴


35년 고물상 운영 김인란씨의 오뚝이 인생

(서울=연합뉴스) 어둠이 가시지 않은 도심의 이른 새벽.
11월이지만 뒷골목에는 벌써 차가운 서리가 내렸다.
하루를 준비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지만 어머니의 하루는 5시부터 시작된다.

새벽 차들은 왜 이렇게 빨리 달리는지 어머니는 몇 번이고 좌우를 살핀다.
어둑어둑한 길을 나선지 30분이 조금 지났을까?
도착한 곳은 길가에 자리 잡은 조그만 풍납동 고물가게.
여기에 자리를 잡은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

주인이 문을 열기도 전에 도착한 단골손님이 자동차에 폐품을 가득 싣고 왔다.

현장음 130kg 이니까 20,800원….

한 차 가득 실어 내린 것이 2만 원 정도…. 이 폐품을 최종 집하장에 넘기면 보통 10%를 남길 수 있다.
새벽길을 달려서 2천 원을 벌었다. 첫 수입치고는 괜찮은 편이다.

평생을 함께한 손때 묻은 손수레! 어머니는 인생의 무게와 함께 이 손수레를 평생 끌었다.

현장음 아빠 있었을 때 13년…. 여기 온 지가 20년……. 한 35년 되나 봐….

20년 전 아이들 아빠는 뇌출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아빠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어머니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들 아빠가 먼저 떠나간 것이 야속하기만 하다.

인터뷰 김인란 (62) / 풍납 고물상
거기 건물 들어선다고 나가라 지저분하다고…. 그때 고물상을 나가라고 하니까 아이 아빠가 내가 죽어야 안 되겠나…. 고물상을 내일모레 비우라고 하니까 술을 많이 잡수고 혈압으로 쓰러져서 돌아가셨어

희끗희끗 어둠이 걷힐 무렵 동네 할머니가 어제 하루 동안 거둬들인 폐품을 가지고 왔다.
얼마나 많이 가져왔을까? 계산기를 누르는 어머니의 손이 바빠졌다.

현장음 4천 5백원입니다.

할머니가 거둬들인 폐품의 가격은 4천 500원…. 고물상 사장은 450원의 이윤을 남겼다.

20년을 같이한 낡은 장부와 저울에는 풍납 고물상의 자취가 배어 있다.
작은 가게지만 어머니는 고물이 들어올 때마다 기록하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현장음 어제 같은 경우는 7번 / 평균 따지면 하루 1만 8천 원에서 2만 원 남아요

새벽 6시 고물 집하장이 문을 여는 시간이다. 폐품 1백 킬로그램이 넘으면 집하장으로 가져올 수 있지만 보통 3백 킬로그램 이상을 손수레에 싣고 온다.

현장음 양이 360kg…. 보통 이 정도는 해요.

종이 100kg은 8천 원에 거래된다. 이것을 집하장에 넘기면 9천 원을 받을 수 있다.
종이 1kg당 고물상 주인은 10원을 버는 셈이다.
.
가져온 폐지가 360kg이니까 새벽길을 달려서 3천 600원을 벌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나오는 고물상. 바람막이 하나 없는 고물가게에는 11월의 날씨가 한겨울 못지않다. 억척같이 살아온 인생이지만 어머니에게도 겨울만은 반갑지 않다.

현장음 안에 밥 먹는 방이 있어. 조그마한 방이…. 전기장판을 꽂을 수 있는…. 거기서 밥 먹고 약 먹고…. 추우면 거기 앉아 있고…. 추워도 어떡해……. 그런 생활을 여기서 20년 동안 했는데…….

1평 남짓 쪽방…. 이곳이 어머니의 유일한 쉼터이다. 이곳에서 밥을 먹고 몸을 녹인다.

고물도 급수가 있다. 종이상자보다는 신문…. 철보다는 구리를 으뜸으로 친다.
구리는 킬로당 4천 원에 사서 4천500원에 넘긴다. 1킬로그램당 10원을 남기는 종이에 비하면 50배나 더 버는 셈이다.

현장음 아빠한테 배웠지…. 이것은 이렇게 하고…. 13년 동안 같이 하면서 처음에는 못했지만 13년 동안 하다 보니 능숙해졌지….

현장음 구리 3kg…. 3kg면 1,500원 남으니까…. 내가 사는데 10,500원…. 파는 데는 12,000원…. 1,500원 남지.

도시락을 싸올 때도 있지만 오늘은 건너 회사 구내식당을 이용하기로 했다.
숟가락을 뜬지 10분 지났을까? 어머니는 후다닥 식판을 비웠다.

현장음 항상 빨리 먹어…. 가게가 비어 있으니까…. 누가 오면 어떡해….

고물상으로 가는 길에 플라스틱 통을 하나 들었다.

현장음 길을 가다가도 병이 있으면 줍는다고 주워야지 아깝잖아

살아온 인생도 굴곡의 연속이었는데 귀까지 말썽을 부린다.
청각장애…. 어릴 때부터 귀가 들리지 않더니 이제는 보청기가 없으면 생활이 불편할 정도가 됐다.

현장음 청각장애? / 유전성이라고….

힘들고 모진 인생…. 오히려 들리지 않아서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귀에 한해서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현장음 나 많이 줘야 해…. / 우와…. 많이 줬네….

작은 고물상 가게에 왜 이렇게 손이 많이 가는지.

책을 뜯어 속지만 분리하면 1킬로그램당 30원을 더 받을 수 있다.
한 시간 정도 뜯으면 손이 저리지만 300원을 더 벌 수 있다.

앉아서 쉬는 순간에도 어머니의 손은 바쁘게 움직인다.

한발 두발 주마등 같이 지나온 세월!
자신의 고통을 뒤로 한 채…. 어머니는 아들과 딸을 위해 한푼 두푼 모았다.
적으면 적은 대로…. 밥 먹는 것은 잊어도 은행가는 것은 잊지 않고 살아온 세월이 30년….

그동안의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듯 어머니는 나라에서 주는 저축상인 국민포장을 수상했다.

인터뷰 변현숙 / 풍납동 새마을금고 전무
30여 년 풍납동 새마을 금고를 거래하셨어요. 고물상을 그때부터 하시면서 한결같이 거래하시면서 부지런하시고…. 새벽부터 늦은 시간까지 고생이 많으신 분이죠

평생을 같이한 손수레의 손잡이는 어느새 구부러지고 바퀴는 녹슬었다.
어머니는 손에 익은 이 손수레와 함께 오늘도 집하장으로 폐품을 나른다.

커다란 집게차 밑에서 하는 작업.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이 순간은 늘 긴장이다.

고물상 사장.
네 아이의 어머니.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그렇듯 자식들을 위해 살았고 자식들이 살아가야 할 이유가 됐다.

현장음 겨울이면 너무 추워…. 추우니까 여기 와서 전기 꽂아 놓고 앉았다가 누웠다가….
살다 보면 행운도 불행도 운명 같은 것인지 모른다.
어머니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고물…. 누군가에게는 버려지고 남루해진 물건….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네 아이를 키우는 보물이 됐다.

현장음 이렇게 남과 같이하지 못했지만…. 어려운 고비 다 겪으면서 같이 있었으면 더 행복하고 더 좋을걸….

현장음 죽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이들이 네 명인데…. 내가 죽으면 고아가 되잖아요…. 어떤 뭘 해도 아이들 네 명을 데리고 살아야 한다…. 고아는 안 만든다….

현장음 우리 아이들 결혼할 때도 안 울었어요. 지금같이 눈물이 나오는데 참았죠…. 내가 울면 아이들이 어떻게 해…. 안 되지…….
cho41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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