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 이소영, 장애를 넘어 천상의 목소리를 꿈꾸다

2008-11-24 アップロード · 887 視聴


(서울=연합뉴스) 현장음) "수수 만 년 아름다운 산 더럽힌 지 몇몇 해…."
맑고 고운 목소리로 힘 있게 우리 가곡 ‘그리운 금강산’을 부르는 스물일곱살 이소영 씨.
경기도의 한 장애인재활지원센터 초청으로 무대에 선 소영 씨도 실은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장애인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려고 기꺼이 오른 무대.
그런 마음이 담겨있어선지 오늘따라 아름다운 목소리에 더 힘이 느껴집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하는 소영 씨를 지하 1층 연습실 복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12시부터 있을 성악 레슨을 앞두고 미리 연습실을 찾았지만 부족한 연습실 탓에 제대로 보이지 않는 눈으로 매번 연습실 복도를 헤매기 일쑵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불이 꺼져 있으면 확실히 빈방인지 알겠는데 불이 켜져 있으면 안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보기가 힘들죠. 그렇다고 마냥 들어갔다가 혹시라도 사람이 있으면 그것도 실례 아니겠어요.”

어렵게 비어 있는 연습실 하나를 찾았습니다.
다행히 목이라도 풀 수 있게 됐지만 혹시 연습실 주인이라도 들어올까 마음은 조급해집니다.

현장음) “미이이이이~~~ 미이이이이~”

급하게 연습을 마친 소영 씨가 레슨실로 들어섭니다.
성악과 3학년인 소영 씨는 기말 시험과 연주회를 대비해 일주일에 1시간씩 성악 레슨을 받고 있습니다.
준비가 소홀한 탓인지 오늘따라 소영 씨의 실수가 잦습니다.

현장음) “고개를 들어야지…. 왜 자꾸 머리를 숙이니? 멀리 쳐다봐 멀리….”

음을 올려야 하는 부분에서 계속 문제가 생기자 결국 지적이 나오고 말았습니다.

현장음) “잠깐만요 그 에프가... 매가 아니고 매~~하고 소리가 가야지. 자꾸 엥 이렇게 막히잖아.”

거듭된 실수로 긴장한 탓에 마음처럼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소영 씨도 답답하기만 합니다.
3년 전 성악으로 전공을 바꾼 소영 씨는 사실 시각장애를 갖고도 2005년 이 학교 합창지휘과에 수석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시력 때문에 합창지휘를 계속 전공하기에는 무리가 있음을 알고 결국 입학 1년 만에 전공을 바꾸게 됐습니다.
다른 학생들에 비해 몇 배나 더 노력을 해야 하지만 소리 면에서는 어느 학생 못지 않게 뛰어납니다.

인터뷰) 김선자 /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강사
“소리 면으로 제가 봤을 때 뒤처지거나 그러지는 않아요. 나무랄 때 없어요. 그런데 이제 자기의 그런 눈이 안 보이니까 일단은…. 다른 애들이랑 비교했을 때 악보 보는 능력이라든지 발음을 또 읽어야 하는데 넘어야 할 산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다른 애들보다 그런 것들에서 조금씩 뒤처져요.”

선천성 백내장으로 오른쪽 눈은 실명, 그나마 안경을 낀 시력이 고작 0.2에 불과한 왼쪽 눈도 겨우 형체만 분간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악보를 보려면 얼굴에 바짝 들이대야 하는데 그 것 또한 수업에선 불가능하다 보니 아예 악보를 외워서 부릅니다.
그래서 소영 씨의 레슨에선 악보를 올려놓는 보면대를 볼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저 같은 경우는 외워서 하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으면 악보를 보고 해야 되잖아요. 다른 애들은 악보를 올려놓은 보면대를 멀리 떨어뜨려 놓고 보면서 하면 되지만 저 같은 경우는 보면대도 필요 없이 악보를 가까이 보고 해야 하니까 그게 좀 어렵죠.”

강의실을 찾아 계단을 오르내리는 일도 소영 씨에겐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소영 씨가 가장 어려워하는 악보를 보고 읽는 딕션 수업은 3층 강의실에서 있습니다.
시력이 거의 없는 소영 씨가 강의를 놓치지 않고 잘 쫓아가려면 항상 맨 앞줄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장음) “한번 읽어보자. 누가 읽을까?”

교수님의 이 말에 갑자기 소영 씨의 손놀림이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얼굴을 바짝 대고 악보를 이리저리 넘겨보지만 오늘 수업할 부분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현장음) "소영이 한번 읽어볼까? 제 악보로 읽어도 되죠? 그래. 너 악보로 읽어….“

결국, 자신의 눈에 익은 소영 씨 악보로 천천히 읽어 내려갑니다.

현장음) “오뜨퐁. 퐁이에요? 죄송합니다. 잘 안 보여서…. 똥으로 보였어요.”

글씨는 알아보기 어렵고 발음하기 어려운 불어도 입에 붙지 않다 보니 한 줄 읽어 내려가는데 진땀이 날 지경입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눈이 잘 보이면 이토록 힘들진 않겠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장애로 인한 한계를 이겨낼 뿐입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재미있게 수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터뷰) 유수민 /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그렇죠. 쉽지는 않은데 언니가 그만큼 또 노력을 하고 더 잘 따라오니까 저희도 별로 불편함은 없고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서 보기 좋아요.”

2005년 합창지휘과에 수석으로 합격한 소영 씨도 예고 졸업을 앞둔 2001년 말 이 학교 첫 도전에선 불합격의 쓴맛을 봐야 했던 아픈 시기가 있습니다.
실력을 인정받아 실기는 통과했지만 면접에선 탈락. 장애인이라 떨어졌다는 생각과 억울함에 온종일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제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분들이 아셨기 때문에 장애에 대한 편견 그런 것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를 떨어뜨린 이유가….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참 떨어진 게 너무 억울하고 분해서 그날 하루 종일 울었어요. 떨어졌다는 공지 나온 날….”

뜻하지 않은 대학입시의 실패로 희망은 한순간 절망으로 바뀌었습니다.
2004년 마음을 다잡고 다시 도전장을 던지기까지 가출과 인터넷에 빠져 2년이란 시간을 방황으로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단 한 번도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습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음악밖에 다른 것은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음악 아니면 살길이 없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에…. 음악은 제 반쪽이에요. 음악 없이는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으로 소통해요.”

음악을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소영 씨가 그 음악을 처음 만난 무렵은 3살 때 피아노를 시작하면서 부터입니다.
뒤돌아서서 피아노를 친지 5년이 됐다는 소영 씨의 연주 실력은 놀랍습니다.
밝고 경쾌한 곡을 주로 연주한다는 소영 씨가 음악에 눈 뜨게 해준 피아노 대신 성악을 택한 데는 후회 없는 이유가 숨어있습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악보 보기도 좀 그렇고 제게 맞는 것은 피아노가 아닌 것 같아서 피아노는 그냥 작곡을 하거나 성악을 하기 위한 기본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했지 전공을 하려고는 생각 못 해 봤어요. 피아노를 열심히 했는데 후회는 없어요? 후회는 없어요. 피아노를 제가 개발해서 뒤로 치게 된 거…. 그리고 지금, 이 정도까지 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요.”

오후 5시, 소영 씨가 학교를 나섭니다.
학교가 있는 서울 서초동에서 집이 있는 인천까지는 2시간 거리.
버스로 한 번,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며 수없이 많은 계단과 인파로 붐비는 환승역을 통과해야 하는 길을 소영 씨는 4년째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도 몇 번 겪었습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한 번은)횡단보도를 건너는데 파란불이 깜박거리고 있었는데 차가 와서 꽝 부딪힌 경우도 있어요. 엄청 고생했죠.”

어머니와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언니와 함께 소영 씨 가족은 인천의 한 2층 주택에 월세로 살고 있습니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장애를 극복하고 성악가의 길을 걷는 소영 씨.
어머니와 언니는 그런 소영 씨로부터 큰 힘을 얻습니다.

인터뷰) 이자영 / 30세, 정신지체 3급
“제가 훌륭한 동생을 뒀다는 게 자랑스럽고요. 앞으로 저를 위한 노래를 한 곡 만들어서 불러줬으면 좋겠어요.”

오늘이 있기까지 장애를 가진 두 딸과 엄마는 많은 시련과 고비를 넘어야 했습니다.
4번에 걸친 소영 씨의 눈 수술과 아홉살때 들이닥친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
먹고살려고 시작한 엄마의 사업은 2003년 외환위기를 맞으며 모두 망했습니다.
대학입시 실패로 소영 씨마저 엇나가자 가족은 끝내 희망을 버리고 자살을 택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내몰았던 가족의 자살 시도는 오히려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세월이 흘러 사정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엄마에겐 평생 지울 수 없는 죄가 있습니다.

인터뷰) 고경애 / 소영 씨 어머니
“평생에 내 한이고요. 진짜 저 애 눈이 좋아질 수만 있다면 제 목숨하고도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남은)한 쪽 눈만이라도 실명이 안 되게끔 막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부모로서도 불가항력이에요. 그러니까 그 눈만 생각하면 제가 지금도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죠.”

내 딸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성악가로 우뚝 서길 바라는 엄마.
장애라는 걸림돌로 아픈 시련을 겪는 딸. 이번엔 가난이 딸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돼 마음이 아픕니다.

인터뷰) 고경애 / 소영 씨 어머니
“세계적인 성악가가 돼서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고 사회에 좋은 기여도 하는 그런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여러 가지로 제가 부모로서 뒷받침을 못 해 주니까 그게 참 마음이 아파요.”

소영 씨가 모니터에 얼굴을 파묻듯이 작곡 작업에 푹 빠졌습니다.
시작한 지 한 달이나 됐지만 바쁜 성악 공부 탓에 여전히 미완성입니다.
음표 하나씩 그리다 보면 언젠가 연주할 날이 오듯 자신의 인생을 조금씩 작곡해 가는 소영 씨.
미완성에서 완성으로 바뀌는 날까지 소영 씨는 희망을 노래합니다.

인터뷰) 이소영 / 27세, 한국예술종합학교 성악과 3학년
“희망 속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도 많지만 대부분이 절망 속에서 살아가요. 그 절망이라는 게 자신이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달라져요. 그러니까 항상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매사에 희망을 가지고 사셨으면 좋겠어요. 희망이라는 말밖에 없네요.”

내레이션 - 서쥬리, 취재.편집 - 김건태, 촬영- 김영훈
kgt101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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