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초대석 남극 빈슨 매시프 원정길 김홍빈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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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7대륙 최고봉 완등의 마지막 관문
열 손가락 없는 장애인으론 최초 시도

(서울=연합뉴스) 홍성완 편집위원 = 산악인 김홍빈(44) 씨는 손가락이 하나도 없다. 1991년 북미 매킨리 봉을 혼자서 등반하던 중 조난사고로 동상을 입는 바람에 산악인으로서는 생명과도 같은 손가락을 모두 잃었다.

등산화 끈조차 남의 도움 없이는 맬 수 없게 된 상황이지만 그는 의지와 끈기로 장애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산악인으로서 그의 성가는 장애인이 된 이후에 더욱 빛나고 있다. 2006년부터 8천m급 가셔브룸 2와 시샤팡마 남벽, 에베레스트, 마칼루의 정상을 차례로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8천463m의 마칼루 원정 시에는 훈련도중 허리뼈를 다쳐 금이 갔고 의사가 입원해야 한다며 포기를 종용했으나 주위 사람들에게 이를 숨기고 끝내 정상을 밟았다.

8천m급 14좌 완등이라는 원대한 목표와 더불어 그의 도전은 또 다른 기록을 눈앞에 두고 있다. 7대륙 최고봉 완등이다. 1997년 유럽 앨브루즈를 시작으로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남미 아콩카과, 북미 매킨리, 오세아니아 코지어스코, 아시아 에베레스트에 이어 마지막으로 남극대륙 최고봉인 빈슨 매시프(4천897m) 등정에 나선 것이다.

11일 출국해 23일이나 24일께 정상에 오른 뒤 다음 달 10일께 귀국할 예정이다. 그러나 빈슨 매시프는 높이보다는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남극대륙의 추위와 눈을 동반한 폭풍설을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등정의 관건이다.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원정 일정도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7대륙 최고봉 완등의 도전은 준비과정부터 결코 쉽지 않았다. 환율이 오르면서 애초 예상했던 1인당 경비가 4천만 원에서 6천만 원으로 늘어났다. 이때문에 준비하면서 굉장히 힘들었고 과연 갈 수 있을까 고민도 많이 했다고 한다.

김씨는 "산행을 하거나 추위를 견디는 것은 늘 해왔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데 가장 어려운 것은 등반경비를 마련하는 것이었다."라고 말한다. 이번 원정에는 김씨와 기록을 담당할 정후식 씨(광주일보 사회부장) 등 2명이 떠나며 정상에도 함께 오를 계획이다. 지난 주말 막바지 준비로 바쁜 김홍빈 원정대장을 후원업체인 KTF 본사에서 만났다. 악수를 해야 할지 어색한 기분이 들었으나 정작 그는 양 손 모두 손목 아래 부분이 없는 장애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스스럼없이 두 손을 내민다. 얼굴엔 환한 미소가 가득하다.

"1997년도에 7대륙 최고봉 등반을 시작해 1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꾸준히 준비하고 계획하면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가슴이 뭉클합니다. 특히 어려운 시기에 제가 간다는 것이 여러 사람에게 힘이 되고 희망을 줄 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7대륙 최고봉 완등은 국내에서도 이미 새로운 것은 아니다. 물론 정상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이다. 그러나 양손이 절단된 중증 장애인으로서는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서도 처음이다. 그의 도전이 빛나 보이는 이유는 기록달성 그 자체보다 불굴의 의지가 가져다준 인간승리에 있다. 좌절하지 않고 재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사고 당시 심장만 뛰고 모든 신체가 다 얼어서 병원에서도 시체를 찾아가라고 할 정도였어요.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고 난 뒤 나를 살려놓은 의미가 무엇일까 생각했습니다. 제가 씩씩하게 살아야지만 앞으로 산에 가서 다친 후배들이 나를 보고 용기를 얻고 살지 않을까 그런 마음이 생겼습니다." 재활과정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알래스카 병원에서 3개월 만에 퇴원, 귀국해 집에 오니까 어려움은 더 컸다. 화장실도 혼자 갈 수 없고 스스로 속옷도 입지 못해 벌거벗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산에서 사고를 당했지만 그를 좌절의 구렁텅이에서 구원해준 것도 산이었다. 퇴원하자 말자 한 달도 안되어 선후배들에게 이끌려 산을 찾게 되었고 그러는 사이에 아픔도 잊고 자연스럽게 장애를 극복하게 됐다고 한다. 손가락이 없는데 어떻게 산에 오를 수 있느냐고 묻자 "두 다리로 걷지요."라며 웃는다. 또 균형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학교 다닐 때도 시내버스를 타면 앉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발끝으로 서 있고는 했지요. 저의 경우 발로만 중심을 잡아야 하는데 그런 훈련이 도움이 되는 거지요. 걸음을 걸을 때도 일자로 걸으려고 노력합니다. 아이젠을 신고 산행을 하다 보면 내 발에 내가 걸려서 넘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일자로 걷는 것을 습관화하려고 하지요."

그가 산에서 느끼고 배우는 것은 한둘이 아니다. "산이라는 것은 내가 조금 힘들면 상대방이 편하다는 거예요. 내가 밥도 해야 되고 텐트도 쳐야 하는데 호주머니에 손 넣고 있으면 누군가가 다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요. 서로 그 일을 분담해서 하면 쉽고 또 빨리 끝나고 하지요. 후배들한테도 가끔은 그런 얘기를 하고 될 수 있으면 시키지를 않고 제가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후배들로부터 나한테 맘이 상해서 그러냐?라는 오해를 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후배이든 친구이든 나를 평생 따라다니면서 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 스스로 해야지만 앞으로 나름대로 발전이 있는 것이지요."

최근 주말이면 산을 찾는 등산객들이 급증하고 있는 데 대한 견해를 묻자 그는 안전의식을 강조한다. "안전을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습니다. 산은 내가 건강하기 위해 또 산이 좋아서 가야지만 산을 아끼고 하는데 많은 사람이 남한테 보여주고자 어려운 코스를 택하고 암벽등반을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국외원정 가서 사고 나는 것은 1년에 두세 명밖에 되지 않는데 국내 산에서는 100여 명이 사고로 죽습니다. 이 숫자는 1990년대 통계이니까 지금은 1년에 사망자만 150여 명은 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산악인답게 김 대장의 등산 얘기는 계속 이어진다. "걷는 것부터도 배워서 걸어야지 발도 덜 다치고 실제 배낭 싸고 하는 것도 다 배워야 하는데 옷 사입는 데는 돈을 팍팍 쓰면서 정말 안전을 위해서 배워야 될 것은 돈을 안 쓰지요. 옷은 찢어진 옷을 입어도 산에 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잖습니까."

정상에 섰을 때의 느낌은 어떨까. "정상의 기쁨은 별로 느껴보지 못했습니다. 그냥 내가 준비했던 산, 포기하지 않고 내가 정상에 섰구나, 그리고 도와주신 분들한테 감사하다는 느낌은 갖는 것도 한 순간, 안전하게 하산해서 집에 갈 일이 걱정이지요. 실제로 대부분 큰 사고가 하산하면서 나거든요." 좌우명을 묻자 "조금 힘들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그러면 물론 느리게 가겠지만 언젠가는 비슷하게 도착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꾸준하게 한 발짝 한 발짝 내딛습니다. 그러다 보면 포기만 하지 않으면 정상을 오히려 제가 더 먼저 도착할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 얘기를 꺼내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밖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같은 경우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창피하다고 집에만 있으면 어떻게 산에 다녔겠습니까? 수영장을 가도 누가 수경을 씌워줘야 하고 등산갈 때도 신발끈을 다른 사람이 묶어줘야 합니다. 남의 도움없이는 생활할수가 없지요. 그렇기 때문에 장애 현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좀 도와달라, 손이 이래서 못한다 고 하면 선듯 도와주고, 오히려 미안하다고도 합니다. 마음을 열어버리니까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이 쉬워졌지요." 그는 이어 "실제 노인만 되면 장애인 아닙니까? 임산부도 일시적인 장애인이지요. 장애인들이 편한 세상은 노약자들이 다 편하다고 그러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한다. 장애인이 따로 없다는 얘기다.

인터뷰 내내 미소를 지어 보이는 그의 편안한 표정에서 장애인의 그늘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는 이미 7대륙 최고봉 완등이나 8천m급 14좌 도전보다도 더 값진 가치를 쟁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jamieh@yna.co.kr

영상취재, 편집 : 김종환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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