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200주년 부활 켄터키 생가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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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젠빌美켄터키주=연합뉴스) 안수훈 특파원 = "저도 역시 켄터키인 입니다."(I, too, am a Kentuckian.)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1861년 한 연설에서 자신이 태어난 켄터키와의 인연을 강조하면서 한 말이다. 이 한마디는 링컨 탄생 200주년을 맞은 올해 켄터키주에서는 유행어가 됐다. 켄터키의 링컨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KALBC)가 주제어로 정했기 때문이다.

링컨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뒤 인디애나로 잠시 이사했다가 일리노이에서 성인시절 대부분을 보냈지만 켄터키인들에게 16대 대통령이 자기 주 출신이란 자부심은 대단하다. 특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계기로 링컨의 정치적 고향인 일리노이주가 더 부각될수록 남북전쟁 승리를 통해 나라를 분열위기에서 구하고, 노예를 해방시킨 지도자가 동향 출신이란 애착은 더욱 강해지는 느낌이다.

기자가 링컨 생가가 있는 하젠빌(Hodgenville)이란 시골마을을 방문한 7일 다운타운에 있는 링컨 박물관 앞에서 만난 한 노인은 `오바마 대통령 당선으로 일리노이가 더 부각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우문에 "그런다고 켄터키가 고향이란 사실이 변할 수는 없는것 아니냐"는 현답으로 대신했다.

생가 관리사무소의 통역 담당인 샌디 브루도 "링컨 대통령을 경축하는데 있어 켄터키는 다른 주와 경쟁관계에 있지 않다"고 전제한 뒤 "우리는 2년전부터 200주년 행사를 준비해 왔고, 링컨 대통령과 관련한 자료나 사료도 훨씬 많다"고 답했다.

주민수가 3천여명에 불과한 전형적인 시골 마을인 하젠빌은 링컨 탄생지 답게 도시의 상당수가 링컨과 연관돼 있다. 켄터키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65번 하이웨이에서 시로 연결되는 도로명이 링컨 파크웨이 이고, 다운타운 한복판의 센추럴 파크에는 대통령 및 독서하는 소년시절을 그린 2개의 대형 동상이 위치해 있다. 공원 옆에는 링컨 박물관이 위치해 있다.

또 하젠빌시를 관할하는 라루(LaRue) 카운티는 매년 10월 둘째 주말을 `링컨 기념일로 정해 축하를 하는데 각지에서 수천명의 관광객들이 몰려 퍼레이드와 각종 게임 및 전시회 등 다양한 행사를 즐긴다. 또 인근의 한 은행과 카운티는 아예 링컨의 이름을 차용해 쓰고 있다.

센추럴 파크의 대통령 청동 동상을 내려다 보는 곳에 위치한 링컨 박물관은 2층으로 그리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링컨의 삶과 당시 역사 등을 추적해 볼 자료나 소장품들이 알차게 준비돼 있었다. 1층에는 링컨의 삶과 남북전쟁 등 미국사와 관련된 12개 장면을 재현해 놓았고, 2층에는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각종 사료와 신문, 잡지 등이 비치돼 있었다. 남북전쟁때 사용된 포탄과 암살범 존 부스가 사용한 권총 모형, 피살 직후 전쟁성이 범인검거에 1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사실을 보도한 `뉴욕 헤럴드 신문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박물관 안내인인 찰스 설먼은 주말인데도 관람객들이 많지 않은데 대해 "1월말 급습한 한파로 인해 주 전역이 정전 등으로 많은 피해를 당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링컨 생일을 전후로 해서는 각지에서 버스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전했다.

시내에서 3마일 정도 떨어진 외곽에는 200년전 링컨이 고고한 일성을 울린 오두막집과 가족농장인 `싱킹 스프링 팜(Sinking Spring Farm)이 있다. 오두막집은 참나무와 찰흙으로 만든 것으로 방 한 칸에 문과 창문이 각기 하나인 작은 집으로 당시의 척박한 생활상을 짐작케 했다. 지난 1848년 다시 지은 오두막집은 파손을 막기 위해 1911년 대리석 석조건물로 된 기념관을 지어 보호중이며, 국가 사적지 겸 국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공원 안내자인 비키 윌리엄슨은 "침실과 거실 및 부엌까지 겸한 방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사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면서 "1909년 기념관을 건립할 당시 성금 모금에는 12만명이 참여해 35만달러를 모았다"고 전했다.

생가 근처에는 또 링컨 가족이 사용한 우물인 `싱킹 스프링이 이끼가 가득 낀 채 터를 유지하고 있었고, 방문객 센터내 갤러리에는 링컨 가족들이 애독하던 1799년판 성경이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링컨은 두 살 때 생가에서 10마일 정도 떨어진 노브 크릭(Knob Creek) 농장으로 이사를 가 7살때까지 보내는데 대통령이 된 후 "하젠빌의 롤린이란 곳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어린 시절 추억은 대부분 노브 크릭에 있다"고 할 정도로 마음의 고향.

방문객 센터와 전시실 및 최근에 완공된 모조 오두막집으로 구성된 이 공원은 한파로 인해 전기가 들어오지 않고, 공원내 나무가 모두 부러져 주말인데도 문이 닫겨있었다. 다만 방문객 센터 뒤편에는 넓은 농장이 펼쳐져 있고, 인근에는 시냇물이 흘러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밭에 호박씨를 뿌리기도 했고, 냇가에서 멱을 감다 익사할 뻔 하기도 했다는 회고담을 어림잡아 짐작케했다.

링컨은 특히 이곳에서 이주교사였던 칼렙 하즐이 운영하던 `ABC 스쿨에 다니며 첫 정규교육을 받았고, 성경과 워싱턴 전기 등 다양한 독서를 하며 소년시절을 보냈다. ABC 스쿨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암송을 시킨 점을 지적하며 `수다쟁이 학교라고 회고하기도 했다.

역사가들은 링컨이 노예제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노예해방의 결심을 굳히게 된 시점도 노브 크릭 시절로 보고 있다. 우선 하즐 선생님이 유명한 노예해방론자였고, 링컨이 다닌 `리틀 마운트 침례교회가 노예제에 반대하는 목사가 설립한 교회였기 때문이다.

공원내 안내문도 "당시 링컨이 살던 하딘 카운티에는 16세 이상의 백인인구가 1천627명인데 비해 노예는 1천7명에 달했고, 특히 루이빌에서 내슈빌로 팔려가던 노예들이 통과하는 길목에 링컨 집이 위치해 있어 노예제의 참상을 알 수 있었다"고 적고 있다.

또 링컨은 뒷날 인척이던 토드가 노예 소유주여서 노예의 생활상을 익히 파악할 수 있었고, 렉싱턴과 루이빌을 방문했을 때 쇠사슬에 묶인 채 보트에 실려 팔려가는 노예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고 노예제 폐지에 대한 결심을 굳히게 됐다고 회고했다.

링컨 가족은 `싱킹 스프링 팜을 둘러싼 소유권 분쟁에서 패한데다 노예를 종부리 듯한 지역 분위기에 환멸을 느끼고 그가 7살때 정든 고향을 떠나 인디애나로 이주하게 되고, 21살때는 일리노이주로 이사한다.

노브 크릭 동쪽에 위치한 스프링필드시에는 링컨의 모친인 낸시 행크스가 태어나고 아버지인 토머스 링컨과 결혼을 한 집과 대장간 그리고 링컨이 가장 좋아한 몰데카이 삼촌의 집이 보존된 `링컨 선조 주립 공원도 있다. 공원 입구 네거리 안내판에는 `링컨의 오리지널 홈이라고 표기돼 있어 링컨 유적지의 연고를 둘러싼 지방자치단체간 경쟁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켄터키는 동향출신 위대한 지도자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04년 켄터키 링컨 탄생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결성해 다양한 행사를 준비해 왔다. `켄터키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를 중심으로 결성된 위원회는 댄 켈리 주 상원의원을 공동위원장으로 해 각계 인사 20명으로 구성됐고, 그동안 100만달러를 모금해 주 전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각종 기념행사를 후원해왔다.

위원회측은 기본 목적에 대해 링컨의 켄터키와의 인연을 전국적으로 축하하고, 특히 켄터키와 주민들이 링컨의 사상과 삶에 끼친 영향을 부각시켜 링컨이 켄터키인이란 사실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데 둔다고 할 정도로 켄터키와의 인연을 강조하고 있다.

기념위원회 관계자는 "링컨 가문은 할아버지 때부터 이곳에 정착한 이래 그의 정치적 우상이었던 휘그당 창설자 헨리 클레이를 비롯해 절친한 친구인 조슈아 스피드가 모두 켄터키 출신이며, 링컨 행정부때 법무장관 등 주요 인사중에도 이 지역 출신이 많다"면서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미국민들에게 알려나가는 게 주요 목표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이를 위해 링컨과 관련한 교육용 자료나 설비 등을 각급 학교에 대여를 해주는 것은 물론 각종 사진과 비디오 등이 포함된 전시관이 설치된 대형 트레일러를 주 전역을 순회시키고 있다.

물론 위원회측은 자체 웹사이트에 링컨이 대선에 출마했을 당시 노예제에 반대하고, 공화당으로의 당적 변경 때문에 켄터키주에서 많은 지지를 받지못했고, 처가쪽 상당수가 그와 반대되는 남부연합 지지자였으며, 노예를 해방시키는 대신 금전적 보상을 주겠다는 링컨의 제안을 거절한 사실 등 `고향의 환영을 받지 못한 영웅의 아픈 사연도 그대로 소개하고 있다.

어찌 됐든 켄터키는 지난 1월말 급습한 한파 피해 복구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2월부터는 주 전역에서 다양한 행사가 차분하게 계속되고 있다. 7일 하루에만 하딘카운티 역사박물관에서 링컨 생일을 기념하는 노래 경연대회와 켄터키 히스토리컬 소사이어티 주관의 워크숍 그리고 아동들을 상대로 한 이야기 교실 등이 잇따라 열렸다.

생일날인 12일에는 하젠빌시 다운타운에서 스티브 비셰어 주지사와 에드먼드 모이 미 조폐국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식을 갖고 이어 새로 발행될 링컨 기념주화 디자인도 공개한다. 또 연극공연, 소년시절 오두막집 완공 기념식 등이 이어지는 등 역사적인 켄터키인을 탄생을 축하하는 이벤트가 계속된다.
ash@yna.co.kr

영상취재:안수훈 특파원(애틀랜타), 편집:조싱글 VJ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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