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폐허가 다 된 호주 산불 현장

2009-03-02 アップロード · 77 視聴

아직도 일부선 산불 진행…외부인 철저통제

(멜버른=연합뉴스) 이경욱 특파원 = 신발 등까지 올라오는 잿더미, 뼈대만 남은 트랙터, 볼썽사나운 전소된 차량들, 기둥만 남은 주택, 타나 남은 아름드리나무…

지난달 28일 오후 호주 빅토리아주 멜버른 북동쪽 야라계곡 초입 야라글렌의 한 산불참사 피해 주택.

남은 것이라고는 타지 않는 철근과 벽돌더미, 깨진 욕조 등뿐이다.

탈 만한 것은 거의 다 타버렸거나 심하게 그을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던 집은 을씨년스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날 따라 날씨가 흐린 편이어서 가끔 먹구름이 흰구름과 뒤섞여 하염없이 야라 계곡을 오갔다.

먹구름은 안타깝게도 야라계곡 주민들이 기다리는 비는 머금고 있지 않았다.

지난달 7일 발생한 산불은 폭염과 열풍을 타고 삽시간에 빅토리아주 북동부 전체로 번져 무려 210명의 목숨을 앗아가고 수천 채의 가옥과 건물을 불태웠다.

70대 노부부의 집도 불타버린 수천 채의 가옥 가운데 하나다.

이름을 밝히기를 꺼리는 노부부는 한국에서 찾아왔다는 기자의 말에 "한국에도 참상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한숨졌다.

노부부는 멀리 산등성이를 가르키며 "건너편에서 몰려온 산불을 보고 큰길로 달려나가 목숨을 건졌다"며 "불과 15분만에 모든 게 타버렸어. 모든 것이…"라고 탄식했다.

산불로 전 재산을 잃은 그들은 피해 발생 21일이 지났지만 복구에는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인근 친척 집에서 머물고 있다.

노부부는 기둥만 남은 집터를 가리키며 "저기에 내 모든 추억이 담겨 있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이 노부부의 집에서 수백m 떨어진 야라글렌 초입에는 산불피해지역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여기에서 2차선 도로를 타고 30여분쯤 더 달리면 산불참사 피해지역인 킹레이크와 힐스빌과 만나고 더 달리면 마을 전체가 화마에 씻겨간 메리스빌이 나온다.

유명한 와인농장이 즐비하다는 야라계곡. 도로 양옆으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포도밭이 늘어서 있다.

초록색 포도잎은 산불참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초록빛을 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음산한 분위기와 맞닥뜨려야 했다.

눈을 들어 먼 산을 바라보니 산꼭대기 부근에서 몇군데에서 하얀 연기가 쉬지 않고 뿜어져 올라왔다. 아직도 산불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산불에 타는 나무와 산불 피해 동물의 냄새가 밀려온 탓일까. 메케한 냄새가 진동했다.

어느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수십m의 아름드리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하지만 나무의 키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나무들이 한눈에 보기에도 측은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불에 그을려 검게 탄 나무, 껍질이 벗겨진 채 하얀 속살을 드러낸 나무, 화마에 못이겨 나자빠진 나무….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산불 화염에 나무들은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불타거나 그을렸다.

수㎞를 달리니 길 왼쪽으로 킹레이크를 알리는 초록색 바탕의 이정표가 보였다. 수십명의 산불 희생자가 난 지역이다.

마을로 들어가 피해현장을 보고 싶었지만 허사였다. 경찰과 소방대원, 보안요원들이 차를 가로막고 있었다. 외부인들을 보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산불참사 현장에는 외부인은 그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산불이 극성을 부릴 때, 전국에서 구호품이 속속 답지할 때 정신없었던 모습을 보여줬던 마을이지만 이제는 외부세계와 굳게 닫힌 것이다.

경찰과 소방당국, 군부대 요원들이 시신 발굴 및 방화수사 작업을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경찰은 잠깐만 보고 가겠다는 말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산불참사에 따른 피곤함이 쌓여 있음이 역력해 보였다.

길 맞은 편은 역시 피해가 컸던 힐스빌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정·사복 경찰관들이 진입 차량을 일일이 검문했다. 경찰은 "통행증이 없으면 들어갈 수 없다"며 "빨리 되돌아가라"면서 거친 말투로 말했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멀리 있던 한 경찰이 "찍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야라글렌 산불 피해 주택만으로도 킹레이크와 힐스빌, 메리스빌 등 산불참사 희생자들이 많았던 지역의 모습이 그려졌다.

한 주민은 "태어나서 처음 겪는 산불"이라며 "인정사정없이 확산되는 산불 앞에서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이날도 소방당국이 산불 확산을 우려해 저지선을 설치하고 주민들에게 경계령을 내리는 등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사투
를 벌이고 있었다.

빼어난 경관과 질좋은 와인농장으로 유명한 야라계곡은 느닷없는 산불로 당분간 폐허의 이미지를 갖게 됐다.

복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여 이전의 모습을 되찾는 데에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두가 알 수 없었다.

이날 자녁 한 행사장에서 만난 존 브럼비 빅토리아주 주총리는 "산불현장을 다녀온 한국 기자"라고 소개하자 "산불 참사가 정말 대단하지 않았느냐"고 오히려 되물으면서 고개를 내둘렀다.

빅토리아주 행정책임자로서 제 할 바를 다하지 못했다는 자책과 함께 규모가 너무 컸던 산불참사에 따른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kyunglee@yna.co.kr

영상취재: 이경욱 특파원(시드니), 편집:조싱글 VJ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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