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초대석 이무석 정신의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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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도취적 사회’ 우울증 상담 많아
“마음 관리, 자기 위로 잘해야 행복”
“한국문화의 강점은 건강한 모자관계”
50대에 국제정신분석가 자격증 따내

(서울=연합뉴스) 채삼석 편집위원 = 요즘 경제 위기로 물질적인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다. 빈곤층은 물론 부유층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마찬가지라고 한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우울증에 시달려 정신과 전문의를 찾는 경우도 많아졌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걱정하면서 한반도의 미래를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무석 대한신경정신의학회장을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연구실에서 만나 요즘 한국인들의 스트레스와 정신 건강에 대한 분석과 처방을 들어봤다.

전남대학교 교수와 전남대병원 의사로서 주중에는 광주에서 일하고 주말엔 서울에서 정신분석 치료를 하는 이 회장은 “위기 자체보다 위기 상황을 대하는 관점이 성격을 결정한다.”면서 “‘자기 위로 기능’을 활용하고 마음 관리를 잘해야 행복해진다.”고 강조한다.

이 박사는 “정신과 상담을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고 자살도 예방할 수 있다.”라면서 “마음 관리의 전문가인 정신과의사를 잘 활용하면 살기가 편해지는데 정신과 진료기록이 있으면 보험을 안 받아줘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개 북한에 대해 사랑과 미움의 두 가지 복잡한 감정을 갖게 된다.”면서 “잘못 하면 지적하고 잘하면 박수쳐주는 것이 현실적이고 건강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50대 중반에 미국과 영국에서 350시간의 집중연수를 받고 6년 만에 국제정신분석가 자격을 따내기도 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 요즘 어떤 상담자들이 많습니까.
▲ 내가 젊었을 때와 지금은 차이가 있어요. 전에는 노이로제 환자가 많았는데 요즘은 우울증 환자가 많아요. 또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모두 스타가 되려고, 최고가 되려고 해요. 모두 튀려고 해요. 그런데 스타가 된 사람도 우울해요. 왜냐하면 그보다 더 높은 스타가 있기 마련이죠. 물론 스타가 못된 사람은 초라하고 패배자 같고… 우울해져서 정신과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요.

-- 상담 환자들의 구성 비율로 볼 때 시대상황의 특징이 어떻게 반영됐다고 봅니까.
▲ 우리 사회를 한마디로 정신의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자기도취적 사회라고 말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내가 최고다. 나를 우러러봐야 돼.” 이런 심리에 빠져 있다는 것이죠. 최고가 못되면 우울해지고 열등감 들고 패배감 느끼는 거죠.
최고가 아니라도, 부자가 아니어도, 스타가 아니라도 가족들과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데, 그게 안 보이는 거죠. 요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웃 사랑, 나라 사랑, 인내와 예의 같은 인간 덕목은 2차적인 것으로 밀려났어요. 점수 만능, 입시 지옥도 이런 사회상을 반영합니다.

--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 상황입니다. 빈곤층은 물론이거니와 부유층도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고 합니다. 분석과 처방을 하신다면.
▲ 물론 어렵죠. 경제가 어려워지면 불안을 느낍니다. 그런데 같은 경제위기인데도 개인차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걱정하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고 마음이 평화로워요. 그 개인차는 성격에서 온다고 봅니다.
“우리 식구는 다 망했다. 나는 아마 실직할 거야. 먹을 것도 없을 거야.” 이렇게 지나치게 비현실적으로 걱정하는 사람도 있어요. 우리는 이를 ‘빈곤 망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예를 들어 정신과에 입원한 부인이 있었어요. 아들들이 성공하고 집이 부자인데도 지나친 걱정으로...아들이 판사였는데, 어머니가 주무시지 못하고 신음을 내면서 “어쩔거나, 어쩔거나. 먹을 것이 없어서 어쩔거나” 걱정만 하는 겁니다. 다음날 아들이 쌀을 한 차 실어 광에 쌓아놓고 보여 드렸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그날 밤도 걱정 때문에 잠을 못 주무시는 거요. 아들이 “쌀이 저렇게 많은데 왜 또 걱정하세요.” 묻자,“그것도 다 먹고 떨어지면 어쩔거나.” 그러더라는 겁니다. 그제야 판사 아들이 “병이구나” 하면서 병원으로 모시고 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많은 사람이 빈곤 망상증에 빠져 있어요. 재산도 있고 주식도 많고 그러는데 실제 경제 상황보다 더 불행해질 거라고 걱정이지요. 성격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집안에 재산이 그렇게 많지도 않은데 “잘 될 거야, 문제 없을거야, 경제전문가들이 알아서 잘들 할거야”이런 식으로 생각해요.
상황이 문제가 아니고 상황을 보는 각도가 문젭니다. 보는 관점은 성격이 결정해요. 그래서 정신의학에서는 사람이 행복해지려면 자기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합니다. 자기 성격을 잘 알고 관리를 잘 해 나가야 합니다. 돈이 많고 재산이 많아야 행복한 것이 아니고 마음과 성격을 잘 관리해야 행복하다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죠.

-- 우울증 환자가 예전보다 많다고 하죠. 중년여성은 물론이고 40-50대 남성과 젊은 층도 상담자가 늘지는 않았나요.
▲ 우울증 환자가 많고 젊은 층도 증가하고 있어요. 연예인의 잇따른 자살 사건으로 나타나는 ‘베르테르 효과’도 큽니다. 특히 요즘 염려되는 것은 실직자도 많고 중년기 우울증이 문제입니다.
중년기 우울증은 자살률이 가장 높아요. 그만큼 지독하다는 것이죠. 실직당하거나 부인이 유방암에 걸리거나 애들이 학교(대학입시)에서 떨어지거나...이런 사건이 닥치면 괴로워 잠이 안 오는 사람이 있어요.
우울증의 수면 특징은 초저녁에 살짝 잠든 뒤 깨어나 새벽 날 샐 때까지 아주 지독한 생각을 한데요. 모두가 불행할 것이라는 절망적인 생각만 하죠. 그래서 그 시간이 고문당하는 시간 같다고 해요. 하루 이틀이 아니고, 밤마다, 이렇게 한 달씩 잠 못 이루면 환자들이 못 견뎌 무슨 짓이라도 하려고 해요. 그래서 자살해요. 자살은 새벽 2시에서 5시 사이가 가장 많아요. 그 시간에 고문당한 듯이 괴로워하다 덜커덕 일을 저질러 버려요.
중년기 우울증에 빠지는 것 아주 조심해야 해요. 중년기에는 대개 자기 인생을 카운트해요. 거기에 대한 대답이 두 가지 있어요. 비관적 대답과 긍정적 대답입니다.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이만하면 열심히 살았다는 긍정적 대답도 있고, 반대로 부정적 대답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이러려고 대학 갔나, 너무 허무해, 헛살았어.” 이런 대답이 나오는 사람은 위기죠.
헛살았어’라는 대답이 나오면 심리적으로는 마치 건물에 금이 간 것과 같아요. 조금만 건드려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겠어요? 부인이 중병에 걸렸다든지,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든지, 어떤 사건이 턱 얹히면 금 간 건물처럼 탁 주저앉아 버려요. 그게 중년기 우울증이에요. 그러니까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 대답을 줘야 합니다.

-- 우울증에 대한 개인적 대처에 한계가 있을 텐데요.
▲ 첫째 예방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부정적 대답을 줘서는 안 되죠. “그래도 내가 최선을 다했지. 인생을 돌이켜 볼 때 어려움도 많았는데 그때마다 잘 넘겨 여기까지 온 거야.”이렇게 긍정적 대답을 줘야죠. 그게 잘 안돼서 우울증에 빠지면 혼자 빠져나오기 힘들어요.
우울증에 빠지면 뇌에 병리현상이 동반돼 혼자 빠져나오기 힘들어요. 정신과 의사를 만나야죠. 정신과 의사는 몇 년씩 배워 전문가 되었고 치료 경험도 있고 약도 있고 하니 만나서 치료받으면 많이 좋아져요.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정신과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도록 해야죠. 내가 현재 신경정신의학회장을 맡고 있는데 정신의학회가 당면한 큰 문제가 있어요. 일반인들이 정신과 진료 기록을 가지고 있으면 생명보험에서 안 받아줘요. 이래서 사람들이 정신과에 가는 것을 기피하게 됩니다. 아주 심각한 문제입니다. 정신과를 많이 이용해야 국민정신이 건강해지는데 정신과 가는 길을 보험이 막고 있단 말이죠. 학회에서도 보험회사와 자주 얘기하고 있습니다. 요즘 자살도 많은데… 정신과 상담과 치료를 받기가 편해야 자살 예방을 할 수 있죠.
정신과에 대한 편견도 문제죠. 이상한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편견인데, 그렇지 않죠. 마음 관리에 대한 전문가가 있는 곳이지요. 전문가를 이용하면 살기가 편하잖아요. 매사가 편해지고...그게 지혜로운 사람들이죠. (편견이 많이 불식돼) 이젠 많이 이용하지만 보험회사 문제 때문에 일반인들이 꺼려 문제죠.
우리 1천300여 정신과 의사들이 마음 아픈 환자들을 돌보고 있지요. 우리 신경정신의학회는 환자들을 더 많이 사랑하는 학회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신질환자들도 사실 알고 보면, 다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일 뿐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지요. 정신과 의사들은 마음의 통증에 대한 전문가들입니다. 일반인들도 매사에 전문가를 이용하면 살기가 편해지지요.

-- 연쇄살인범 강호순 사건을 정신의학 측면에서 어떻게 분석해 볼 수 있나요.
▲ 참 비극적 사건이죠. 그 사람과 인터뷰 안 해봐서 확신 있게 말할 수는 없지만... 매스컴에 나온 내용만으로 보면 그 사람은 첫째, 그런 범죄 저지르고도 죄책감이 없다는 거죠. 사이코패스의 특징이지요. 정신의학적으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라고 해요. 그들에게는 양심의 소리가 안 들려요. 신기할 정도죠.
일반인들은 이해 못 해요. 그런 사람은 공감 능력이 없어요. 보통 사람들은 내가 누구를 때렸을 때 그 사람이 아프겠다고 내 마음에 느껴지기 때문에 차마 못 때리죠. 어떤 사람은 바퀴벌레도 못 죽여요. 착한 마음이죠. 공감 능력 때문이죠.
사이코패스는 사람 목 졸라 죽였을 때 “이 사람 인생이 어떻게 될까, 가족이 어떨까, 꿈이 어떻게 무너질까?“ 이런 생각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거죠. 공감 능력 없고 죄책감 없고 자기가 잘못 해놓고도 상대방에게 전부 책임을 돌려 버려요. 이런 사람들이 또 강간을 잘하거든요. 그러고도 상대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다니니까 그랬다고 해요.
양심에 구멍이 난 사람이죠. 우리 용어로는 ‘슈퍼 에고 라꾸나’라고 해요. 양심부문인 초자아에 구멍이 난 사람으로 봐요. 발동이 걸리면 제동이 안 걸려요. 인격의 문제, 성격의 문제죠. 어떻게 해서 이런 성격이 되느냐가 문제죠. 어릴 때 성격이 만들어져요. 성장과정이 잘못될 때 성격장애가 나타나죠.
잘못된 가정교육에서 성격장애가 나오고 이러한 성격장애가 범죄자를 양산하게 되죠. 자식을 정말 잘 키워줘야 해요. 흉악범의 가정 조사를 해보면 거의 대부분이 깨진 가정이더라는 거죠. 표면적으로는 그럴듯한 가정이더라도 내면적으로 무너진 가정이 있어요.
인간 교육이 예절 교육인데 이것을 가르치지 않는 가정에서 이런 성격장애인이 나와요. 예컨대 아버지가 퇴근해 들어오시면 아들은 “아빠 지금 오셔요.”라며 인사를 해야 합니다. 사람이 들고 날 때 인사하는 것은 인간관계의 기초적인 예절이지요. 그런데 어떤 아이들은 공부만 하고 있다가 아빠가 “너는 인사도 안 하느냐?”고 나무라면 엄마가 항의해요. “내일 모의고사 보는데 왜 아이 신경을 건드리고 그래요?” 아빠는 할 말이 없어집니다.
수능 점수가 최고의 가치이고 예의는 2차적인 가치로 밀려나지요. 사회 분위기와 가정교육이 이렇게 연결되어 있어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지요. 자식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인간관계의 소중함을 교육해야 하지요.

-- 저서를 보면 ‘자기 위로 기능’이라는 용어가 나오는데요.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 정신분석가 코허트 박사가 얘기한 용어입니다. 예를 들어 실연당한 처녀가 있다고 할 때, 방에 틀어박혀 고민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마음속에서 자기를 위로하는 음성이 들려요.“그려지마. 잘 될 거야. 너는 꿈이 있잖아. 털고 일어나자. "그러면 마음속에 일어나던 우울증에서 빠져나오게 되죠. 자기 위로의 기능 덕분에 실연의 고통을 털고 일어날 수 있었지요.
그런데 자기 위로 기능이 약하면 잘 안돼요. 자기 위로 기능은 엄마와 아빠와의 관계에서 어릴 때부터 위로받고 자라면서 마음속에 저축이 된다고 해요. 이 기능이 강한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아빠와 엄마의 위로 기능이 마음속에 내재화된 사람이에요. 어려울 때 자기 위로 이 기능이 올라와 기분을 바꿔주고 우울한 감정에서 구해내 준다는 거죠. 정신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기능입니다. 자기 비난 기능을 억제하고 위로 기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잘 살 수 있죠.
암환자의 72%가 굉장한 스트레스 받고 암에 걸렸다는 조사 결과도 있어요. 스트레스가 면역기능을 억제해 동맥경화나 암으로 연결되기도 해요. 그래서 스트레스 관리가 중요하죠. 과거에 인간 건강의 적은 박테리아, 세균이었거든요. 현대에 와서 건강의 적은 스트레스죠. 스트레스 관리 잘못하면 암이나 질병에 걸리고 불행해져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려면 포기를 잘해야 합니다. 미련 때문에 포기하지 못하고 집착하면 굉장한 스트레스가 돼요. 면역기능이 떨어지고 질병으로 넘어가게 되죠. 그런 예가 많아요. 정신과 의사로서 40여 년 했는데 포기하기 쉽지 않아요. 그것이 가능하면 정신적으로 아주 건강한 사람입니다. 미련을 버리고 포기하게 되면 치료 효과가 확 차이 나게 되죠.
포기할 것은 과감하게 포기해 버려야 합니다. 미련 때문에 집착하다가 우울증의 덫에 걸릴 수가 있어요. 일단 덫에 걸리면 혼자 빠져나오기는 어렵지요. 이럴 때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아요. 매사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인생을 편하게 사는 방법이 아닌가요?

-- 급변하는 사회에서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 국민의 스트레스가 큰 편은 아닌가요.
▲ 변화가 스트레스입니다. 변화가 일어날 때 긴장이 높아지거든요. 남자가 군대 갈 때 긴장이 높아지고, 여자는 시집갈 때 스트레스가 높아집니다. 한국인은 과거 5천 년 역사에서 가장 급속한 변화의 시대에 살고 있어요. 그래서 한국인들이 굉장히 스트레스가 높다고 말할 수 있죠.

-- 그럼에도 한국사회의 장점이 많다고 하죠. 세계에서 유례없이 민주화, 산업화, 정보화를 짧은 기간에 성공시킨 모범적인 나라로 평가받고 있지요. 무엇이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보나요.
▲ 우리 민족이 정말로 강한 민족이거든요. 강대국 틈새에서 순수문화와 민족성을 유지한 나라는 세계사에 거의 유례가 없다고 하죠. 한국인의 모자관계가 건강하고 강하기 때문에 건강한 인격과 성격들이 자랄 수 있었고, 강한 문화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요.
한가지 예를 들자면, 6·25 후에 전쟁미망인들이 많이 생겼죠. 젊은 엄마들이 재혼하지 않고 아이들 키우기에 온 정성 쏟았어요. 사회에 크게 공헌하는 인물을 키웠거든요. 이런 일은 세계에 유례가 없다고 해요.
정신과에 오는 엄마들이 가끔 “남편 때문에 못살겠다.” 하면서도 “가정 유지가 자식에게 좋기 때문에 내 인생은 희생합니다.”이래요. 엄마가 희생하고 가정을 유지했기 때문에 자식들은 깨지지 않은 가정에서 건강하게 자라서 건강한 인격을 만든 토양이 됐지 않았나? 그게 우리 민족의 힘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하게 돼요.
또 정신과의사가 돼 미국에 근무하는 사람들에게서 들은 얘긴데요. 미국인 의사가 지나가면 거들떠보지 않고 자기들끼리 포커하고 논데요. 그런데 한국인 정신과의사가 지나가면 손잡아 보려고 달려나오고...그렇게 정겨워한다는 거여요. 미국인 의사들보다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 준 것도 아닌데도 그런다는 거죠.
우리에게는 정의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해석한대요. 환자들은 정에 굶주리고, 정에 목마른 사람들이거든요. 한국 정신과 의사들은 유년기 어머니로부터 받은 정이 있어서 자기도 모르게 풍겨 나오는 거지요. 한국인들은 비교적 다른 민족에 비해 건강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건강하고 성숙한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고 봐요. “문화가 성숙한 것은 엄마들이 자식들을 건강하게 키웠기 때문이다. 한국 엄마들의 자녀 교육 방법이 건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지요.
미국 이민사회에서도 한인 엄마들의 교육열은 정평이 나 있대요. 자식 교육에 특별히 애정을 많이 가진 민족으로 알고 있다고 보죠. 요즈음 일부 나타나는 치맛바람은 이런 모성애의 잘못된 표현이라고 볼 수 있지만요. 한국의 자식들은 어머니 은혜를 노래하며 많이 울지요. 전쟁터에서 총 맞아 쓰러질 때도 한국 군인은 “어머니...”를 부른다고 해요. 미국 군인들이 “Mama"를 부른다는 말은 못 들었어요.

-- 50대 중반에 영국과 미국에서 특별한 연수 경험을 쌓았다고 들었습니다.
▲ 의사로서, 교수로서 살다가 정신분석에 대해 체계적인 공부를 하고 싶었어요. 인간 내면세계를 탐구하고 치료하는 게 특별한 관심사였습니다. 런던과 샌디에이고에서 350시간 정신분석 교육을 받고 6년 만에 국제정신분석가 자격을 얻었어요.
국제분석학회가 인정하는 정신의학자가 우리나라에는 다섯 명 있습니다. 작년에 한국정신분석연구회를 만들었어요. 역사적으로 큰 의미가 있는 겁니다. 일본에서는 1930년대 만들어졌거든요. 이제는 이 기구를 통해서 훈련받으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국제정신분석가가 될 수 있는 거지요. 올해에 7-8명 신입생을 뽑았어요. 이 사람들은 이제 미국, 영국에 안 가고도 우리나라에서 훈련받으면 분석가가 돼요.
작년 봄에는 일본 정신분석학회의 초청을 받아 한국 문화와 정신분석’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습니다. 한일 간 정신분석학회의 교류를 위해 아주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 남북관계 긴장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어쩌면 운명적으로 북한 사람이나 북한 문제에 대해 복합적인 감정을 가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 네, 거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지요. 정치나 군사학은 잘 모르겠고…. 정신의학 측면에서 보면, 또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북한에 대한 감정이 참 복잡해요. 어떤 면에서는 동정심이 나고, 짠한 감정이 일어나고, 또 어느 날은 굉장히 화가 나기도 하거든요.
같은 대상에 대해 상반된 감정이 일어나요. 우리 정신분석 용어로는 양가(兩價) 감정이라고 해요. 값이 두 개라는 거죠. 사랑과 미움의 두 가지 감정을 북한에 대해 갖게 되죠. 동포라는 처지에서 생각하면 정말 애정이 가고, 정치집단이라고 생각하면...증오심도 나요. 북한 하면 감정이 복잡해져요. 굶주린 어린이들을 생각하면 불쌍해 도와줘야 하고...정치집단들이 복잡한 국민감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주 현실적인 것이 건강한 것이죠. 잘못 하면 지적하고, 잘하면 박수쳐주고...이렇게 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죠. 사실 잘 모르겠어요. 확실한 것은 양가감정이지요. 이북에 대해 복잡한 것이 우리 민족의 감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 이무석 교수는 정신분석 공부를 하면서 용어의 해석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래서 후학들에게는 그런 고생을 시키고 싶지 않아 정신분석에로의 초대 (이유 출판사)’를 써냈다. 정신분석 교과서다. 정신분석 이론과 기법을 그림 보면서 이야기 책을 읽듯이 비교적 쉽게 공부할 수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친밀함 (비전과 리더십)’은 외로운 현대인들에게 주는 글이다. 특히 정신분석을 받고 남편과 친밀한 관계를 회복한 Ms. A라는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정신분석의 시작과 종결 과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30년 만의 휴식 (비전과 리더십)’은 저자로서 큰 기쁨과 보람을 느낀 책이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자신의 ‘마음속의 아이’를 찾아 치유한 경험을 써 보낸 글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이 교수는 내년에 정년이 되어 전남대학교를 떠난다. 그동안 정신과 전문의와 교수로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며 살았듯이 앞으로도 듣고 말할 힘이 있는 한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며 살 것이다. 다만, 이제부터는 정신분석가로서 분석하고 정신분석 기법을 가르치는 일을 더 하고 싶다고 한다. 최근 서울 청담동에 연구실을 하나 새로 마련했다. 주중에는 광주에서 일하고 주말에는 청담동 연구실에서 정신분석 교육과 치료를 한다.

sahmsok@yna.co.kr

촬영.편집:지용훈 VJ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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