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이 친서에 사용한 휴대용 국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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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종류 중 1점 국립고궁박물관 발굴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대한제국 고종황제는 광무 10년(1906년) 1월 경운궁에서 다음과 같은 문구를 적은 친서를 독일황제 앞으로 보냈다.

"짐은 대덕국(大德國.독일)의 호의와 지원을 항상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짐에게 파국이 닥쳐왔습니다. 이웃 강대국(일본)의 공격과 강압성이 날로 심해져 마침내 외교권을 박탈당했고 독립을 위협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늘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짐은 폐하께 고통을 호소하고 다른 강대국들과 함께 약자의 보호자로서 본국의 독립을 보장해 줄 수 있는 폐하의 우의를 기대합니다. 이렇게 된다면 짐과 조선의 신민은 귀하의 성의를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합니다. 광무 10년(1906년) 1월 경운궁에서. 폐하의 좋은 형제."

누란의 위기에 처한 고종의 절절한 위기감이 묻어난다.

이 친서는 희한하게도 두 종류가 전한다. 하나는 초고본인데, 실물은 행방이 묘연하고 그것을 찍은 사진만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유리원판에 남아있다.

이 초고를 토대로 고종황제는 일부 문구를 손질해 독일황제에게 친서를 발송했다. 이 최종 완성본 고종의 친서는 현재 독일에 소장돼 있으며, 최근에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원본을 촬영해 왔다.

이 두 종류의 친서에는 모두 황제어새(皇帝御璽)라는 국새가 찍혀있다. 이를 감정한 한국서예사 연구자이자 인장 전문가인 손환일 박사는 "두 국새는 같은 종류"라고 말했다.

고종황제가 독일황제를 비롯한 외국 군주나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로 그의 국새가 찍힌 것으로는 현재까지 10여 통이 발견됐다.

국립고궁박물관은 이 친서들에 사용한 국새를 판별한 결과 2종류가 사용됐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것을 박물관은 제1 국새와 제2 국새라는 명칭을 부여해 구별했다. 이 두 국새에는 모두 황제어새라는 문구를 새겼다.

독일황제에게 보낸 친서에 사용된 것은 제2 국새에 속한다. 하지만 이 제2 국새는 아직까지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고궁박물관이 지난해 12월 해외에서 구입한 고종황제의 국새는 제1 국새에 속한다.

이 제1 국새가 사용된 고종황제의 문서로는 현재까지 이탈리아 군주에게 보낸 친서(1903.11) 1통과 러시아 황제에게 보낸 1904년 9월자와 같은 해 11월자 및 이듬해 4월자 친서 3통, 그리고 영국인 허치슨(Hutchison)에게 무슨 일을 재가한 문서(1906.10)가 파악됐다.

이번에 확보된 제1 국새는 물론이고 아직 종적을 찾을 수 없는 제2 국새는 기존 문헌에는 보고가 되지 않는 고종황제의 도장이다.

제1 국새는 국사편찬위원회가 소장한 식민지시대 유리원판 사진에 그 실물 사진 몇 장이 남아 있어 국새의 진위를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제1 국새는 그것을 보관하던 전체 상자인 외함은 소실되고 없으며 보통(寶筒)이라 일컫는 내함과 함께 입수됐다.

이 내함은 황동(黃銅)으로 3단으로 만들어 하단에는 인주(印朱)를 넣을 수 있게 했다.

이는 이 국새가 고종이 언제건 실무에 사용할 수 있게끔 제작한 휴대용 국새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촬영,편집:박언국 VJ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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