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자료로 드러난 임시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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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촉국민회 전단 등 신자료 발굴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임시정부 90돌을 맞아 한국민족운동사학회가 9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학술대회에서는 새로운 자료로 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위상과 활동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다양한 미발표 자료가 공개됐다.

또 대한민국의 정통성, 국내언론에 비친 임시정부의 모습, 남녀평등의 차원에서 바라본 임시정부 등 다양한 시각에서 임시정부의 역동적인 모습을 조명하는 논문들이 발표됐다.

◇베일 벗은 임정관련 자료들
정창현 국민대 교수는 6일 미리 배포한 해방공간의 전단을 통해서 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이라는 논문에서 해방공간을 수놓은 다양한 발굴자료를 공개한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우익 세력의 지방 활동을 보여주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독촉국민회)의 포항군 기계면지부 자료다.

독촉국민회는 이승만과 김구가 연합해서 만든 우파적 성향의 단체였다.

그동안 좌익세력에서 나온 각종 전단(傳單)과 성명서 등은 많이 발굴됐지만, 우익세력의 지방활동을 보여주는 자료는 거의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정 교수의 설명이다.

이 자료에는 인민위원회(좌익계열)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이 담긴 성명서와 좌우합작운동 시 좌익의 원칙을 비판하고 우익의 입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전단이 소개돼 있다.

또 대한민국임시정부 특파사무국이 1945년 11월 초 김구 주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을 앞두고 뿌린 전단도 공개된다.

이 전단에는 완전한 자주독립을 위해 서로 대립을 없애고 대동단결해 힘차게 나가자라는 주장이 담겨 있다고 정 교수는 설명했다.

아울러 이영, 정백 등이 주도한 장안파 조선공산당의 기관지 전선의 창간호도 공개된다. 1945년 10월 1일 나온 창간호의 원본은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있으며 이번에 공개되는 건 사본이다.

정 교수는 전선에는 장안파와 대립관계에 있었던 재건파 조선공산당을 이끈 박헌영을 비판적 입장에서 바라보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고 소개했다.

박헌영의 극좌적 편향성을 비판한 이 사본은 "당의 재건을 위하여 전통적으로 투쟁한 우리만이 당의 정통"이란 입장 등이 거론돼 있다고 정 교수는 전했다.

1923년 중국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대회를 준비한 국민대표대회주비회(國民代表大會籌備會)에 소련 정부의 자금이 유입된 사실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조철행 국가보훈처 연구원은 러시아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서에서 수집한 국민대표대회주비회 결산보고서를 근거로 이같이 주장했다.

조 연구원은 1922년 5월 사회주의 운동가 한형권이 가져온 모스크바 자금이 주비회 경비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주비회 활동이 전개됐으며, 서로군정서의 김동삼과 연해주 고려혁명군의 이청천 등 독립운동가들도 소련의 자금을 이용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비밀 연락조직망인 교통국의 아지트였던 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이륭양행(怡隆洋行) 건물이 현재의 단둥시 건강교육소(흥륭가 25호)가 아니라 이곳에서 압록강 쪽으로 200여m 떨어진 건물(옛 단둥 시 제1경공업국)이라는 주장이 담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동교통국과 이륭양행 연구(유병호.다롄대)를 비롯해 이승만이 임시정부 관계자에게 보낸 편지들을 분석한 이승만의 대한민국임시정부 통치 구상(오영섭.연세대) 등이 소개된다.

◇대한민국 정통성의 중추는 임시정부
유준기 총신대 명예교수는 발제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적 정통성과 그 의의에서 "임시정부는 수립부터 광복까지 한국독립운동의 최고기관으로서 그 정통의식을 계승해 민족사의 맥을 이어왔다는데 그 의의가 크다"고 강조했다.

그는 "임시정부 조직의 법통성은 대한제국 정부의 발전적 계승에서 출발, 현재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며 "정부 형태가 삼권분립의 민주적 체제를 갖추고 있었고, 정부의 지도체제와 조직의 운영방식에서도 민주주의적 원칙을 끝까지 지켰다는 점도 높이 평가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준식 친일재산조사위원회 상임위원은 여성의 관점에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조명한다. 그는 발제문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여성 독립운동을 통해 "임시정부 관계자들은 여성이 민족운동에 참여하는 게 독립을 이루는 데 필수불가결하다고 생각했다"며 "따라서 그들은 국민으로서의 여성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황민호 숭실대 교수도 1920년대 초 국내언론에 나타난 임시정부의 항일독립운동에서 "국내언론은 임시정부의 항일활동에 대해 비교적 다양한 관점에서 기사를 게재했다"며 이에 따라 "당시 식자층은 임시정부의 존재와 임시정부의 항일독립운동 활동에 대해 일정한 정보를 알 수 있었고, (임정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을 하게 됐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buff27@yna.co.kr

영상취재.편집 : 왕지웅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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