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 어전을 유료주차장으로 쓰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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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깨진 창문과 칠이 다 벗겨진 외벽, 조각 난 바닥 타일…

이 곳이 한 때 대한제국의 황제가 머물던 어전이었다는 사실을 누가 믿을까.

서울 중구 정동 정동극장 옆 중명전(서울시유형문화재 제53호)은 1897-1901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진 근대건축물이다.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 내 황실도서관으로 건립된 중명전은 1904년 경운궁 대화재 이후 고종의 편전(평상시에 기거하는 전각)이자 외국 사절의 알현실로 사용됐다.

또 1905년 을사늑약이 이곳에서 체결됐으며 덕수궁 내 근대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초창기 근대건축의 풍모를 간직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1월31일 그 역사적ㆍ학술적 가치를 인정해 중명전을 서울시유형문화재에서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승격시키기로 결정했다.

현재 중명전은 문화재로서 최소한의 대접도 받지 못하고 있다.

중명전을 찾은 관람객은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53호 중명전이라는 파란 안내판보다 정동극장 주차장입니다라는 갈색 안내판을 먼저 보게 된다.

중명전의 관리를 위탁받은 정동극장은 중명전 마당을 기본 30분 2천원, 추가 15분당 1천원의 요금을 받는 유료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정동극장은 "중명전 마당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는 조건으로 정동극장이 중명전 관리를 떠 맡은 것"이라며 "이미 20년 넘게 주차장으로 사용해왔고 주차요금은 주차관리원 인건비와 중명전 관리비로 사용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동극장이 중명전을 관리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현관 유리창은 먼지가 잔뜩 껴 유리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기 어려울 정도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1층 정면 창문 유리마저 깨진 채 방치돼 있다.

깨진 유리창을 통해 들여다 본 내부도 을씨년스럽기는 마찬가지. 천장 마감재가 떨어져 나가 전기 배선이 그대로 드러났고 전등은 당장이라도 떨어질 듯 위태롭게 매달려있다.

현관에는 녹슨 자물쇠를 채워뒀다. 일반인이 내부를 관람하려면 일일이 주차관리요원에게 자물쇠를 풀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외부 사진촬영도 금지다. 중명전 뒤편에 있는 미 대사관 숙소가 보안시설이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사진기를 꺼내들면 대사관 경계를 위해 곳곳에 배치된 전경의 제지를 받게 된다.

사실상 일반 관람객의 접근이 제한된 중명전은 정동극장을 찾은 관객을 위한 주차장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이는 중명전이 소유자는 문화관광부로, 문화재 지정 주체는 서울시로 이원화돼 있어 두 기관이 복원ㆍ보수 책임을 서로 떠 넘겨온 결과다.

실제로 2005년 서울시가 중명전의 1차복원 공사를 시행하다 예산부족을 이유로 문화관광부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문화관광부는 예산반영 시기가 지났다며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원공사는 도중에 중단됐다.

여기에 정동극장도 "일주일에 1번 먼지를 제거하고 환기시키는 정도의 관리만 할 뿐"이라며 "곧 관리 책임이 문화재청으로 넘어가는데 우리가 임의로 복원ㆍ보수할 수도 없고 한다해도 예산낭비"라며 발을 뺐다.

그러나 깨진 창문 유리를 갈아끼우고 현관 유리창에 낀 먼지를 닦아내는 일이 복원ㆍ보수에 속하는지 관리에 속하는지는 상식으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다.

더구나 관리 책임을 진 기관이 문화재 앞 마당을 주차장으로 사용해 훼손을 심화시킨다는 비판이 시민단체 등에서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정동극장은 중명전의 소유ㆍ관리권이 문화재청으로 넘어가자 문화재청에 중명전 앞마당을 계속 주차장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재청은 "정동극장의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회신했다"며 "곧 중명전 복원 및 활용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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