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29) 궁시장 김 기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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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연합뉴스) 남현호 기자 = "마음이 곧아야 곧은 화살이 나와. 도중에 포기한 제자들이 많아. 색깔을 내고 곧게하는 작업이 제일 어렵지"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활을 잘 쏘는 동쪽의 민족이라 해서 동이(東夷)족이라고 불렸다.
요즈음도 아이들이 즐겨 가지고 노는 장난감에 활과 화살이 빠지지 않는데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 우리 민족의 전통 공예 기술을 고스란히 간직하며 50여년 넘게 화살과 씨름해 온 장인이 있다.
궁시장(弓矢匠) 김 기(金 起.66)옹이 바로 주인공이다. 전남 광양시 광양읍 읍내리 광양읍사무소 뒤편에 자리한 광양 김 옹의 집을 찾아가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궁시장이란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술과 그 기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활을 만드는 사람을 `궁장(弓匠), 화살을 만드는 사람을 `시장(矢匠)이라고 일컫기 때문에 화살만 만들고 있는 김 옹은 엄밀하게 말해 `시장이라 할 수 있다.

김 옹의 집 대문을 들어서자 각종 공구가 걸려진 간이 작업장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거실은 마치 조선시대 군영 막사 안에 들어온 듯 활과 화살로 가득했다. 김 옹은 "사람들이 화살은 많이 봤겠지만 어떻게 만드는 지는 잘 모를 것이야. 화살 하나를 만들려면 자그마치 133번 손이 가야 해"라고 첫 마디를 땠다.

김 옹이 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5세 때다.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김 옹은 아버지를 따라 여수로 이사를 왔고 아버지가 궁도장 옆에서 이발업을 해 궁인(弓人)들이 드나들면서 궁시들과 인연을 맺었다. 김 옹은 이곳을 드나들던 당대 최고 궁시장인 박상준 선생에게 화살 제작의 기본을 익혔다. 그 뒤 마산에 사는 조명제 선생을 따라가 6년간 기술을 연마한 뒤 군 복무를 마치고 27세때 경남 창원에서 첫 공장을 열었고 1974년 광양에 터를 잡으면서 오늘의 `광양 궁시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만들기를 좋아했고 손재주가 있었어. 워낙 좋아하니까 어머니도 반대하지 않았지" 김 옹은 "어렸을 때 보면 광양에는 활 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정작 화살 만드는 사람이 없어서 외부에서 장인을 초빙해 겨우 수요를 맞췄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광양은 이순신 장군의 전승지가 주변에 있어 예로부터 국궁이 성행했고, 지금도 국궁장이 6곳이나 된다. "활 만드는 법을 배워야 겠다고 생각해 예천까지 갔어. 활 쏘는 것도 배우고 말이여. 그런데 활을 만들기가 너무 어려워 활은 지금은 만들지 않고 있어" 김 옹이 만드는 화살은 TV사극이나 박물관에 가서야 볼 수 있는 국궁(國弓)에 사용되는 화살이다.

시누대, 꿩깃, 화살촉, 오늬(복숭아 나무) 등으로 만드는 궁시는 제작 과정이 까다롭고 정교해 적어도 133번 손이 가는 작업 끝에 완성된다. 화살의 생명인 살대 고르기 작업부터 쉽지 않다. 서리가 내린 후 10-12월 햇볕과 해풍을 고루 맞고 자란 강원도 고성과 양양 일대 2-3년생 해양죽(海洋竹.시누대)을 사용해야 한다.

3개월 동안 음지와 양지를 번갈아 가며 건조시킨 뒤 무게와 직경 등이 일정한 것을 선별한다. 선별된 살대는 불에 구워 강도와 색깔을 내고 활 줄을 끼울 오늬와 깃을 다는 작업을 해야 한다. 오늬는 싸리나무로 만들며 오늬와 살대는 소등심으로 연결한 뒤 민어 부레풀을 이용, 복숭아 껍질로 감싸 화살이 터지고 습기가 엄습하는 것을 막는다.

화살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꿩깃 작업도 만만치 않다. 꿩 한마리로 화살 2개 정도 밖에 만들지 못한다. 꿩이 날개를 펼칠 때 가장 긴 깃 2-3개를 뽑아 아침 이슬을 맞히고 아침 볕에 쬐어 칼로 깃을 다음어 살대에 다는 일은 10여년 이상 숙련되지 않고는 할 수 없다.

"화살 20개 모두 똑같이 맨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속도, 명중률, 평형율이 제각각일 수 밖에 없어. 어디 하나 쉬운 대목이 없지" 김 옹이 사용하는 공구만도 30여개가 넘고 살대를 굽는 화로를 비롯해 이 중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개발한 것이다.

만든 화살은 그가 직접 테스트를 한다. 궁도 4단인 그는 궁도장에서 명중률과 탄력성을 시험한다. 활 시위를 당길 때 손에 끼우는 `깍지도 김 옹이 최초 개발한 것이다.

김 옹이 지금까지 만든 화살은 대략 12만여개에 달한다. 15세 때부터 만들기 시작했으니 매년 평균 2천400여개를 만든 셈이다. 김 옹은 화살을 만든지 30년이 지난 1986년 전남도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면서 비로소 솜씨를 인정받았다. 하지만 1년 뒤인 1987년 작업 도중 톱에 왼쪽 엄지가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떨어진 살점을 주어다가 8차례에 걸쳐 수술을 했고 3년간 치료를 받았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화살에 대한 김 옹의 열정은 식지 않았고 한 손가락이 없는 상태에서 작업을 계속 했다. "평생을 바친 일을 손가락 하나 없다고 그만 둘 수는 없었지. 하루 10시간 이상 쪼그리고 앉아 화살을 만들었어"

김 옹이 만든 대나무 화살(유엽전)은 요즘 나오는 카본(Carbon) 소재 화살과는 근본부터 차이가 있다. 또 아무나 쏠 수도 없다. 궁도 4단 이상의 고수만이 다룰 자격이 주어진다.

김 옹의 큰 아들 철권(38)씨가 보조 조교로, 둘째 아들 철호(34)씨가 전수자로 지정돼 대(代)를 잇고 있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런 김 옹에게 한가지 소원이 있다. 후진 양성을 위해 궁시 전수교육장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최근 광양읍내에 252평 규모의 땅을 샀다. 교육장만 건립되면 올해 천안에서 열리는 세계 궁도대회에 참가국 대표들로부터 각국의 활과 화살을 기증받아 전시할 계획이다.

김 옹은 "재료를 못 구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면서 "화살은 그냥 사람 죽이는 무기가 아니라 우리 선조들의 충무 정신, 즉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의 손에서 고구려 고분벽화 `수렵도에 그려진 화살이 마치 살아난 듯 하다.
hyunho@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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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ham
2007.10.14 04:25共感(0)  |  お届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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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ham
2007.10.14 04:25共感(0)  |  お届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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