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 여창가곡 인간문화재 조순자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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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연합뉴스) 최병길 기자 = "천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진짜 전통 가곡(歌曲)을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歌曲) 예능보유자인 영송당(永松堂) 조순자(曺淳子.63)씨가 말하는 가곡의 꿈은 이렇게 소박하다.
평생을 한결같이 우리의 전통 가곡을 올곧게 노래하고 있지만 국민들에게 흔히 알려진 가곡은 여전히 서양식 음악에다 우리말만 입힌 가곡 아닌 가곡으로 왜곡돼 있기 때문이다.
조씨는 "일제 강점기 조선의 문화말살 정책에 따라 우리의 전통 가곡이 일본과 친일파 매국 음악가들에 의해 진짜 우리의 가곡은 사라지고 족보도 없는 서양가곡이 등장하면서 순식간에 주객이 전도되고 말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이렇게 가곡이라는 근본적인 개념마저 뿌리째 뽑혀 그 존재마저 사라질 뻔 했던 우리의 전통 가곡을 꿋꿋하고 질기게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그다.
우리나라 전통 가곡은 시조시(時調詩)를 피리, 가야금, 거문고 등 관현악 반주에 얹어 부르는 성악곡이다.
따라서 가곡은 시와 노래, 연주가 한데 어우러진 그야말로 종합예술이다.
경남 마산시 회원동에 우리나라 최초로 문을 연 가곡전수관에서 그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기자 스스로도 가곡 하면 당장 선구자, 가고파 수준에 그치는 까막눈을 갖고 우리나라 전통 가곡의 명인을 만난다는 것이 왠지 부끄러웠다.
가곡전수관에서 만난 그는 은쟁반에 옥구슬 구르는 청아한 목소리에다 해맑은 미소로 기자를 맞아줬다.
인사를 건넨 기자에게 조씨는 가곡 이야기는 제쳐놓고 덜렁 지방애찬론부터 폈다.
"문화는 다양하고 공평해야 한다.경상도 총각에 반해 마산에 시집와서 40여년을 여기서 줄곧 살고 있고 앞으로도 이곳을 지킬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문화시장을 이끄는 서울 수도권도 아닌 지방에서, 그것도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은 우리나라 전통 가곡을 지방에다 가곡전수관을 짓고 앞으로 어떻게 지켜나갈까.
조씨는 "어렵게 지켜온 가곡을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보다 얼마나 더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을 것인가를 오히려 고민하고 있다"며 가곡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강조했다.
"가곡은 다소 관조적이고 정적인 면, 일정한 형식과 반주가 필요하기 때문에 보편적인 노래로 불리지 못한 한계도 있지만 오히려 그점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오염이 안돼 다행스럽다"며 가곡의 장.단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인 가곡은 예술성 뿐만 아니라 음악적 구성 역시 완벽하게 짜여진 노래다.
흔히 판소리 등 소리들은 다른 무엇의 도움없이 가창자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한 일명 원맨쇼 형식이지만 노래라 불리는 가곡은 관현반주와 일정한 악곡형식이 함께 짜여져 음악이다.
따라서 가곡은 그냥 부를 수 없고 선율과 반주를 다듬고 전체적인 음악을 모두 다듬어 부르는 예술작품으로 피어난 음악이다.
조씨가 본격적으로 국악을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전인 1958년으로 당시 14세 였다.
당시 KBS방송국에서 남녀 국악연구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면서 응시해 엄청난 경쟁력을 뚫고 당당히 공채 2기로 합격했다.
조씨는 그곳에서 온전히 남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인, 명창들에게 가무악(歌舞樂)을 몽땅 익혔다.
그는 "모든 과목이 다 좋았지만 특히 가곡이 좋았다"며 "모든 성악곡과 기악곡은 목으로 부를 수 있어야 악기도 되고 춤도 돼 가곡을 가장 먼저 배웠다"고 회고했다.
가곡에는 우리말의 발음법, 호흡법, 발성법을 기본적으로 알게 해줘 가곡을 익히고 난뒤에야 판소리, 민요, 악기, 춤도 배웠다.
하지만 조씨는 역시 가곡이 너무 좋아 노래를 계속 했다.
그의 첫 스승은 국립국악원 초대 원장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중요무형문화재 30호 가곡과 41호 가사의 예능보유자가 된 소남(韶南) 이주환(李珠煥) 선생이다.
이 선생은 조씨를 비롯한 문하생들을 부동자세로 앉혀 꼼짝도 않고 손장단과 함께 노래를 가르칠 정도로 매우 엄했다고 한다.
조씨는 가곡 50년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바로 스승인 이 선생과의 잊을 수 없는 가곡 해외공연을 들었다.
조씨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국립국악원이 생기고 난 뒤인 1964년 처음으로 해외공연을 나갔을 때 춘면곡을 독창하고 이 선생님과 함께 태평가 이중창을 한 것이 너무나 또렷하다"며 감회에 젖었다.
그때 조씨의 나이 22살이었다.
2001년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조씨가 전하는 가곡의 세계는 평화로움 그 자체다.
그는 "지난 2003년 태풍 매미가 엄습했을 때 혼자 집에 있었는데 너무나 무서운 생각이 들어 정좌를 하고 앉아 이삭대엽 버들은을 계속 불렀더니 어느새 마음이 안정되면서 편안해 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가곡은 명상음악이요, 물질문명의 이기심을 털고 정신문명에 안착할 수 있다고 그 맛을 전했다.
어떻게 득음의 경지에 올라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직도 득음을 한 것 같지 않고 여전히 득음을 위해 계속 노래하고 있다"며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그는 결코 우리의 전통 가곡을 멋지게 부르는 명인으로 촉망받거나 아주 특별한 인물이 아니라고 스스로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의 가곡세계를 진지하게 논하기 보다는 자꾸 가곡 그 자체를 알리는데 인터뷰 내내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조씨는 "작지만 그토록 소망했던 가곡전시관을 짓고 나니 시설이나 예산면에서 너무나 부족한 것이 많다"며 "가곡 전수에 열중하기 보다는 전수관을 운영하기 위해 사비를 털고 혼자서 백방으로 뛰어 다녀야 할 판"이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의 표정과 말에는 힘든 기색보다 행복한 가곡의 세계에 빠진 아름다운 열정이 더 새록새록 느껴진다.
그는 "앞으로 이곳에서 가곡을 전문적으로 가르쳐 이수학점을 인정받을 수 있는 국악단과대학 기능은 물론 가곡이 국민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내달부터는 상설공연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동방신기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학생들도 가곡을 듣고 편안함을 느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뻤다"며 "우리의 진짜 전통가곡이 세상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하는데 일조했으면 참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조씨는 지난 200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로 지정된 조씨는 그동안 조순자 여창가곡 전집(세마당 전집 45곡) 조순자 여창가곡 전집(첫째바탕 15곡) 등 음반 다수와 여창가곡 마흔다섯닢 가집에 담아낸 노래와 사람들 등 다수의 책도 펴냈다.
choi21@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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