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공지영ㆍ위화 상하이서 문학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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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에 힘 빼고 재미있는 소설 써야죠"

(상하이=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제 문학의 목표는 엄숙주의를 지양하는 것입니다. 어깨에 힘을 빼고 오락을 하듯 즐거운 작품을 쓰려고 합니다."(공지영)

"맞습니다. 공지영 작가와 제가 추구하는 문학의 방향은 같습니다. 형식주의는 문학의 장애요소입니다."(위화)

한국의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44) 씨와 중국 작가 위화(余華ㆍ47) 씨가 9-10일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열리고 있는 제1차 한·중 작가회의에 참가했다가 인근 호텔에서 따로 만나 문학대담을 가졌다.

두 작가는 2000년 위씨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난 이후 교류를 계속해왔다.

이날 대담에서 두 작가는 각각 6년과 10년이라는 침묵기를 거쳤고, 쉽게 읽히는 재미있는 소설을 써야한다는데 의견을 함께하는 등 공통점을 확인했다.

공씨가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문학적으로 통할 줄 알았다"고 말을 건네자 위씨는 "나도 마찬가지였다"고 화답했다.

공씨는 1988년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이후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장편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등을 펴냈다.

치과의사로 일한 경력이 있는 위씨는 1983년부터 창작활동을 시작해 장편 허삼관 매혈기 살아간다는 것 등을 출간했으며 2005-2006년 장편 형제들을 10년 만에 내놓았다.

다음은 특정한 주제나 질문자 없이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대담 내용.

▲(공지영. 이하 공) 2000년 한국을 방문한 위화 씨를 처음 봤을 때 영어로 예스(Yes)와 노(No)도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충격이었어요. 공유할 수 있는 단어가 한 개도 없었으니까요.

▲(위화. 이하 위) 저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공부를 해서 영어교육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와 같은 세대 작가들 태반은 영어를 모를 겁니다. 요즘 후배작가들은 잘 할 겁니다.

▲(공) 한국 작가 가운데 이문열 씨를 만난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위) 해외에서 만나긴 했는데 언어의 장애가 있어 깊이 있게 교류하지는 못했습니다. 중국에 돌아와 그 분의 작품을 읽었더니 느낌이 좋더군요. 한국 작가는 이념, 문학경향에 있어 각자 특색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외국인 독자로서 그 부분까지 섬세하게 알고 있지는 못합니다.

▲(공) 소설 살아간다는 것을 윤문하면서 엄청난 눈물을 흘렸어요. 저와 나이가 세 살 차이 나잖아요. 40대 동년배인데 너무나 다르게 성장했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위) 그 소설을 통해 불안한 시대를 살다간 한 사람의 운명을 형상화하고 싶었어요. 창작자로서 소박한 인생의 의미를 알려주고 싶었죠. 어떤 삶이든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감수해 나가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다는 거 말입니다.

▲(공) 2000년 위화 씨와 제가 참가한 포럼에서 서로 통한다는 걸 느꼈어요.

▲(위) 마찬가지였습니다. 강한 신뢰감을 느낄 수 있었죠.

▲(공) 토론 중에 사람들은 보편적 내용을 말하는 것 같지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기 위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말하니까 제가 좋아졌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래서 권위적이
고 형식에 반항한다는 점에서 더더욱 공감을 하게 됐어요.

▲(위) 참,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어떤 작품입니까?

▲(공) 베스트셀러가 되어 돈을 많이 벌게 해 준 작품이죠. 사형수를 주인공으로 해서 인간의 죽음, 행복에 대한 얘기를 썼어요. 돈에 대해 얘기하면 위화 씨도 만만치 않죠? 초판을 50만부 찍는다는 데 사실이에요?

▲(위) 중국은 책값이 한국보다 쌉니다. 해적판을 막기 위해 아예 50만부를 찍어요.

▲(공) 가장 좋은 반응을 얻은 책은?

▲(위) 살아간다는 것이 100만부, 형제들은 70만-80만부 정도 판매됐어요.

▲(공) 유명작가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나요?

▲(위) 모든 작가처럼 그런 욕심을 갖고 창작활동에 임했죠. 하지만 매우 유명한 작가가 되기보다 조금이라도 이름을 남길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로서 성장 기간이 길었어요. 좋은 작품을 창작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죠. 단숨에 유명작가가 된다면 그렇게 쌓은 공덕을 가질 수 없죠.

▲(공) 저는 6년간 글을 못 쓴 적이 있어요. 위화 씨도 그런 시간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위) 10년 간 못 썼어요. 인터넷의 영향으로 픽션의 세계가 얼마나 생명력이 있을까 생각했어요. 침묵기에 터득한 것은 문학의 운명 등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작가로서 성장할 수 없다는 거에요.

▲(공) 저도 인터넷 시대에 픽션이 무슨 의미가 있나, 문학이 나한테 요구하는 게 진짜 내가 나아가야 할 길인가 고민했어요. 위화 씨는 저와 유사점이 많더군요. 스토리텔링에 강하고 단문을 쓰며 설명을 많이 하기보다 빠르게 전개하는 스타일이잖아요. 저는 문학의 엄숙주의에 대해 20년 간 갈등했어요. 이제 어깨에 들어간 힘을 빼려 해요. 위화 씨 소설은 이미 그게 빠져 있더라구요.

▲(위)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20세기의 모더니즘적 사고에서, 속박에서 벗어났음을 인식하고 있어요. 서구의 모더니즘에서 배운 것은 형식주의가 장애요소라는 겁니다. 신작을 쓸 때는 새 주제에 맞는 창작법을 찾으려고 노력합니다. 그렇게 하면 형식적 문제가 있더라도 작품의 생명력은 더 강해지니까요. 소설창작을 축구와 비교하고 싶습니다. 아름다운 포즈를 취하더라고 골인을 못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공)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출간한 뒤 신작인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을 쓸 때는 나 자신이 연극배우가 된 것 같더라구요. 무거운 사형수 이야기를 털어버리고 발랄한 사랑 이야기를 써야 했으니까요. 위화 씨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저는 엄숙주의에서 완전히 탈피하기보다 그것을 지양하면서 소설의 오락적 기능을 강조한 문학, 즉 어깨에 힘을 빼고 즐거운 것을 추구하려고 해요.

▲(위) 그것이 공지영 씨와 제가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또한 앞으로 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하구요. 많은 작가들이 독자의 취미가 저급하다고 하지만 모든 책임은 작가 자신에게 있어요. 자신도 읽고 싶지 않은 것을 독자에게 강요하면 안됩니다. 어떤 신문에서 봤는데 영어권의 작가 100명의 작품을 선정한 결과를 보니 스토리가 강하고 캐릭터가 뚜렷하며 삶과 죽음, 사랑을 다뤘다는 공통점이 있더군요.

▲(공) 독자에게 읽기 좋고 스토리텔링이 강한 작품이 평단의 평가와 차이가 있나요.

▲(위) 모더니즘의 파장 속에 있는 중국 평단은 난해한 작품을 좋은 작품이라고 합니다. 책을 읽을 때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마음을 비워야 해요. 자신의 생활방식 또는 의식과 다른 작품은 자신을 더욱 풍부하게 합니다.

▲(공) 일간지에 연재중인 즐거운 나의 집은 유머를 제 문학 속으로 끌어들이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작품이에요.

▲(위) 제 신작은 원한에 대한 겁니다. 글을 빨리 써내려가도록 나 자신에게 독촉하는 주제입니다. 5월에 한국을 방문해 연세대에서 문학의 상상력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합니다. 문학적 상상력은 현실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공) 그동안 보내주신 차(茶)에 대한 답례로 이번에는 제가 나전칠기 필통을 선물로 드렸는데 다음에는 뭘 사주실 건가요?

▲(위) 비밀입니다. (웃음)
js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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火星
2007.10.26 01:14共感(0)  |  お届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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