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명인◀(43)나전장(螺鈿匠) 이형만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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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연합뉴스) 박인영 기자 = "조가비는 오색영롱한 자연의 색을 품고 있지요. 이 고운 빛깔에 매료돼 나도 나전칠기에 엮인 것 같기도 하고..."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나전장 이형만(61.李亨萬)씨는 햇볕이 들이쬐는 작업실 창가에 앉아 전복 껍데기를 햇살에 이리저리 비춰보기 바쁘다.

초여름인양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5월 초,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의 한 주택가 골목에 자리잡은 이씨의 공방을 찾았다. 작업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천연도료인 옻의 알싸한 향이 코끝을 찔렀다.

작업장 한 구석에서는 문하생 4명이 둘러앉아 옻칠한 공예품들의 마무리 작업에 여념이 없다.

나전(螺鈿)은 여러 무늬의 조개껍데기 조각을 물체에 붙이는 일을 일컫는 것으로, 흔히 자개라고 불린다. 이를 응용한 공예품으로는 나전 위에 옻칠을 해서 만들어 내는 나전칠기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공예기술은 삼국시대부터 시작됐던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에 들어서면서 나전칠기가 큰 발전을 이룬 것으로 전해진다.

이씨가 나전칠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60년대 초 경남 기술원양성소(공예학교)에 들어가 스승 김봉룡 옹을 만나면서부터다.

1946년 경남 통영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씨는 당시 무상으로 중등교육까지 시켜주던 기술원양성소에 들어가 부소장이던 김 옹을 만나면서 나전칠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김 옹은 조선 말 나전칠기의 명인으로 알려진 박정수 옹의 제자이자 중요무형문화재 제10호 1세대로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만국장식공예품박람회에서 은상을 수상해 우리 민속공예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린 바 있다.

1963년 공예학교를 졸업한 이씨는 김 옹이 개인공방을 차려 나가면서 따라나서 1대 1 도제식 수업을 받으며 전통 기법을 전수받았다.

그는 1970년 군복무를 마치고 당시 질 좋은 칠을 찾아 원주로 공방을 옮긴 김 옹을 인사차 찾았다가 스승의 권유로 다시 작업에 참여하면서 그대로 원주에 정착했다.

김 옹이 작고한 후 2년만인 1996년 나전장 제10호 중요무형문화재 전승자로 지정된 이씨는 "스승이 돌아가신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 일을 계속하다 눌러앉아 이제는 원주 사람이 다 됐다"며 껄껄 웃는다.

이씨는 원주에서 그의 작품 활동에 정신적 버팀목이 돼 준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만난다. 김 옹이 나전칠기의 기량을 전수해줬다면 장 선생은 그가 작품 활동을 하는데 정신적인 버팀목이 돼 준 스승이다.

이씨는 묵화를 그리던 장 선생과 1988년 서울 인사동에서 공동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그는 "당시 나는 선생님의 전시회에 참여할 만한 위치에 있지 않았는데 나이들어 돌아보니 그때 선생님은 시골에 묻혀 일만 하고있던 내가 답답하셨던 모양"이라며 "안목을 넓히라는 뜻이셨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매일 오전 8시에 작업장에 나온다는 이씨는 새벽 1시까지 밥 먹는 때를 제외하곤 하루의 대부분을 작업에 쏟아붓는다.

무려 45가지 공정을 거쳐야 완성된다는 나전칠기는 소품류를 제외하고는 크기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대개 빠르면 6개월, 보통의 경우 1년 이상의 제작 기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연필로 종이에 문양을 그리고 수정 작업을 반복한 후 다시 이를 투명한 유산지에 옮겨 자개에 문양을 그리고 실톱으로 자개를 잘라 무늬를 만드는 데에만 보통 6개월 이상의 기간이 걸린다.

그는 "장롱같이 손이 많이 가는 대작은 2~3년이 걸리기도 한다. 보통 1점에 1년 이상 걸리다보니 전시회 참여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긴 작업 시간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마음에 드는 질 좋은 국산 자개를 구하는 일이다. 양식 전복에서 나는 자개는 자연산만큼 빛깔이 곱지 않아 자연산을 선호하지만 점점 고갈돼 가고 있어 재료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그는 "수입산 자개는 화려하긴 한데 단색적인 반면 국산 껍데기는 오색이 영롱하게 다 나와 국산을 선호하지만 환경오염 탓인지 조가비가 점점 작아져 쓸게 별로 없다"며 안타까움을 내비쳤다.

올해로 10년째 충남 배제대 칠예술학과에 초빙교수로 출강하고 있는 이씨는 "전통공예의 바탕이 제대로 서 있어야 현대공예도 가능한 것"이라며 "스승에게서 배운 기술을 학생들에게 전수하면서 전통공예의 맥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내 본분"이라고 말했다.

이런 아버지를 곁에서 보고 자란 그의 두 아들 광웅(37)씨와 상훈(35)씨도 가업을 이어가고 있다. 광웅씨는 현재 배제대 강사로 재직 중이며 2004년 전국공예품대전에서 옻칠반상기를 출품해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씨는 "천혜의 도료인 옻을 사용하는 나전칠기는 앞으로 전망이 좋은 분야이고 우리 애들이 50-60대가 될 때쯤이면 나전장들도 대우를 받게 될 것"이라며 "그 때까지 뒷받침 해줄 수 있을지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mong0716@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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