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名人-풀피리 명인 오세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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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연합뉴스) 우영식 기자 = "꾀꼴. 꾀꼴. 꾀꾀꼴 꾀꼴. 뻐꾹. 뻐꾹. 호르르 뻐꾹"
엷은 풀잎 한장에서 만들어진 소리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새소리와 흡사하다.
모를 낸 지 얼마 안되는 논과 논두렁 사이로 피어난 야생화가 5월의 정취를 자아내는 어느날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자일리에 살고 있는 풀피리 명인 오세철(49.吳世哲.경기도 무형문화재 제38호)씨 집을 찾았다.
단아한 한복차림으로 취재진을 마중 나온 오씨는 집안에 들어서자 마당에서 갓 뜯어낸 풀잎으로 메나리(농부가의 하나)조 가락을 한곡조 뽑아냈다.
오씨의 악기는 풀잎 한 장이다. 그렇다 보니 그의 집은 거실 벽 한쪽을 차지한 서도소리 배뱅잇굿 가락과 장식장을 가득 채운 상장과 트로피 외에는 여느 농가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침엽수를 제외한 넓적한 풀잎이나 나뭇잎이면 연주가 가능하다는 오씨가 풀피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다. 친적집에 놀러갔다 우연히 80대 노인의 풀피리 연주를 목격하게 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한다.
풀피리 소리에 매료된 오씨는 당시 풀피리를 불었던 전금산(全今山) 선생을 찾아가 초금(草琴).초적(草笛) 연주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오씨는 "스승님은 세상에 널리 알려지신 분은 아니었지만 풀피리와 농악에 조예가 깊으셨던 분이었다"며 "아마 스승님이 없었다면 풀피리의 아름다운 세계를 알 지 못했을 것"이라고 스승을 소개했다.
그러나 풀피리를 배운 지 2년도 안돼 스승인 전금산 선생이 세상을 떠나 홀로 연습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때부터 그는 틈만 나면 혼자 집 근처 한탄강가에 나가 각종 풀잎과 나뭇잎을 가지고 연습했다. 독초(毒草)인 줄 모르고 잎에 대고 연습을 하다 죽을 뻔한 고비도 몇번 넘겼다.
풀피리에 빠져 공부에 뒷전이다 보니 숱한 회초리 세례도 받았지만 풀잎과 나뭇잎이 무릎을 덮을 정도로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 자신만의 풀피리를 만들게 됐다.
군에 입대하기 전인 1978년 MBC 묘기대행진에 출연해 풀피리 피아노 협주를 하고 KBS 민요백일장에 나가 풀피리와 경기민요 뱃노래로 입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 받았던 오씨였지만 2만평 너른 땅 농사일 때문에 꿈을 접게 됐다.
그러던 그가 다시 풀피리를 불게 된 것은 부인 전대순(48)씨의 역할이 컸다.
오씨가 창(唱)을 잘했던 아버지 오창환(2002년 82세로 작고)씨의 타고난 목청을 물려받은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부인의 권유로 1999년 중요무형문화재 제29호로 서도소리 예능보유자 이은관 선생을 찾아가 문하에 들었다.
오씨는 "아버지는 천하의 한량으로 평생 매 사냥과 낚시를 즐기셨던 분이지만 소리도 참 잘하셨다"며 "풀리리만 불다가 자신도 잘했던 소리를 배운다고 하니까 굳이 반대를 하지 않았다"고 풀피리 입문 당시를 술회했다.
1년만에 배뱅잇굿을 완창하게 된 오씨는 이후 풀피리 연주와 소리를 곁들여 전국 각지를 돌며 공연을 갖게 됐고 마침내 2002년에는 경기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되는 영예도 얻었다.
오 씨는 무형문화재 지정 이후 가진 공연이 700회를 넘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소리나 풀피리 연습을 하는 곳은 수십 길 벼랑이 형성돼 그 아래로 북녘땅에서 시작돼 하염없이 흐르는 한탄강가 언덕이다.
독특한 목소리로 애간장을 끊어내는 소리를 할 때나 풀피리로 청송곡을 불때면 소름이 끼칠 정도로 온몸이 오싹해진다.
오씨는 한탄강에 얽힌 사연을 강원도의 대표적인 메나리조 가락에 맞추고 한이 담긴 경기 소리이별가조의 후렴을 엮어 한탄강 아리랑이라는 민요를 직접 만들어 풀피리로 연주하고 창으로 부르고 있다.
오세철 풀피리 독주집까지 낸 그는 두 가지를 한꺼번에 하나보니 목이 견디지 못해 소리보다는 자신만의 풀피리 연주에 주력하며 농사일과 공연을 병행하고 있다.
또 조선 성종 때 만든 악학궤범에 초금(草琴).초적(草笛)으로 소개된 풀피리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풀피리 전수 교육 교본을 만들어 100여명의 제자들에게 연주법과 재료 고르는 방법 등을 가르치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대규모인 1만평 논농사를 손수 짓고 있는 오씨가 이렇게 바쁜 일정을 소화할 수 있는 것은 아무 불평없이 뒷바라지를 해주는 부인의 내조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지런한 그의 성품 때문이다.
그는 지금도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조용한 한탄강가에서 3-4시간씩 풀피리 연주와 소리를 연습한 뒤 아침을 먹는다고 한다.
일하다 힘들 때도 막걸리 한사발을 마시고 소리 한가락을 풀피리와 곁들여 부르다 보면 피곤함이 사라져 농사일을 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
오씨의 남은 소망은 전수관을 지어 자신만의 풀피리를 제자들에게 전수, 대를 잇게 하는 것이다.
각종 상장을 내보이며 이제 고교 1학년인 막내딸 연경(17)양 자랑을 늘어놓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오씨는 "우리 막내딸이 세상에서 풀피리를 가장 잘 불 것"이라며 "풀피리 전수자가 된 막내딸 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키워내는 것이 내 역할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가진 것이라곤 농사를 짓던 땅 밖에 없어 2천여평 부지에 전수관을 지으려고 준비 중이지만 농지법상 쉽지가 않아 관계부처와 협의중에 있다"며 "전수관을 지으면 제자들이 연습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wyshi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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