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가곡 동심초 작곡가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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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꽃 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처연하게 시작되는 동심초나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로 서정을 이끄는 산유화.

아직까지 애창되는 이 가곡들을 작곡한 원로 음악가 김성태(97)옹이 노구를 이끌고 가곡 되살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한국가곡협회가 오는 21일 국회 헌정기념관 강당에서 열리는 한국가곡 진흥을 위한 토론회겸 가곡 부흥선언문 채택 행사에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95)옹과 함께 참여할 예정.

김성태 옹은 이미 작고한 홍난파나 현제명 등과 함께 국내에 서양음악을 뿌리내리게 한 선구자다.

서울대 음대학장, 예술원 회장 등 그의 이력은 그만큼 화려하다.

현재도 서울대 명예교수, 예술원 회원, 한국음악저작권협회 회원 등 직함을 갖고 있으며 저작권협회 등 회의가 열리면 2∼3시간씩 참여하면서 꾸준히 대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삼성동 자택에서 만난 김성태 옹은 고령인 만큼 말은 다소 어눌했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여느 젊은 음악가 못지 않아 보였다.

"부지런히 순수음악을 발표하고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지요".

가곡과 국민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는데 대한 아쉬움을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

원인으로는 현대인의 바빠진 삶, 대중음악과 다양한 취미활동 등을 들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것만 좋다거나 키워야 한다는 식의 고집이나 이기심은 없었다.

"(가곡) 방송도 많이 하고 그럼 좋겠지만 모든 사람이 순수음악을 하는게 아니라 많은 사람은 대중음악을 좋아합니다". 남의 영역도 인정해주는 원숙함이 배어있다.

자신이 작곡한 가곡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묻자 "자기 곡은 다 좋지요"라고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말하더니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은 산유화라고 했다. "가곡집(1991년)을 낼 때도 그래서 산유화를 맨앞에 넣었어요. 가끔 부르기도 해요".

이어 산유화 한소절을 부른 뒤 "방울새야 방울새야 쪼로롱"으로 시작되는 방울새 한 소절과 함께 동요 얘기를 꺼냈다.

"연희전문을 졸업할 때 독학으로 배운 실력으로 만든 20여곡이 담긴 작품집을 냈는데 새야새야 파란새야로 시작되는 민요도 채보해 담았죠. 그때 내가 음악에 재주가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그후에 일본으로 유학 가 본격적으로 음악을 공부할 생각을 굳혔다고 했다.

이어 일본 유학을 끝내고 귀국한뒤 생활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경성보육학교에 음악주임으로 취임했어요. 거기서 몽금포타령을 합창으로 만들었구요".

친일 논란의 대상인 일제 때 경성후생실내악단 활동에 대한 얘기도 나왔다.

그는 후생실내악단이 바이올리니스트 김생려와 트롬본 이유성이 주도해 스트링 쿼텟(현악4중주)을 만든 것이라며 자신은 편곡 부탁을 받아 베토벤의 운명교향곡, 홍난파의 봉선화 등을 편곡해줬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그의 막내 아들이 껴들어 "아버님은 그 당시 작곡을 하고 있었다"며 친일 행적에 대한 평가가 잘못 됐음을 강조했다.

대화의 소재는 그의 경신중등부 시절로 옮아갔다.

"광주학생운동 때 전국적으로 학생운동이 있었는데, 축구 선수들이 맨앞에서 경찰을 밟고 나갔고 일본 관헌에게 붙들려 사흘 고생했어요. 그것 때문에 학교에 안 나갔고 결국 퇴학당했죠". 그는 당시 축구, 야구, 농구 선수까지 할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퇴학당한 그가 어떻게 연희전문에는 들어갔을까.

"일본으로 전학가서 공부하기도 했고 (연희전문이) 축구선수라서 받아줬어요". 요즘으로 치면 체육 특기생으로 대학에 들어간 격이다.

고 현제명 선생과 함께 서울대 음대 설립을 주도한 과정을 물었다.

"현제명 박사 제안으로 해방후에 경성음악전문학교를 남산에 있는 유치원 건물에 만들어 운영하던중 서울대에 음대 설립을 제안해 이뤄졌죠. 현제명 박사가 학장을 했고 나는 교무과장을 했습니다".

경성음악전문학교 설립도 미군이 주둔하고 있던 당시 영어를 잘하는 현제명 박사가 대외 업무를 맡았으며 교과 과정 등 내부 업무는 자신의 몫이었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한 평생 음악과 함께 산 노음악가의 삶의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정직해야 합니다. 나는 서울대 학장 시절 서무과장이랑 점심 먹으러 가면 꼭 내가 냈어요". 서무과장이 내면 학교 돈을 쓰게 되는 것이어서 그랬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작곡을 하고 있다고 했다. "동요나 찬송가 이런 거 합니다. 동요는 곧 100곡을 넘을 거예요".

젊은 음악가들에 대한 당부 사항이 혹여 있는지 물었다.

"정직하면 됩니다". (질문을 잘못 알아들은 것 같아 음악측면에서의 당부사항을 다시 물었더니) "열심히 해야죠". 간단명료했다.

지난 2002년 발간된 자신의 "민요시에 의한 가곡집"에 사인을 해서 기념품으로 건네주는 그의 손이나 얼굴 피부는 90대라고 보기에는 주름이 별로 없어 팽팽한 편이었다. 70대로 보일 정도였다. 그가 평생을 함께 해온 음악이 건강을 지켜주는 듯했다.

ev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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