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노근리 국제평화학술대회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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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란에 따른 비극 美 발표 반박 잇따라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25일-29일 충북 영동 노근리의 쌍굴다리에 피신하고 있던 민간인 수백명을 미군이 사살한 사건이다.
1999년 AP통신의 보도로 세계적 이슈로 부각됐으며 한ㆍ미 양국이 공동 진상 조사를 벌였다. 2001년 미국은 진상조사결과 민간인을 사살하라는 군수뇌부의 명령은 없었다며 전쟁의 혼란에 따른 비극으로 판단, 공식사과를 거부했다.
그러나 희생자 가족과 몇몇 학자들은 미국 정부의 발표를 반박하는 자료를 끊임없이 발굴해 왔다. 1일 서울 프라자 호텔에서 열린 제1회 노근리 국제평화학술대회에서는 미국의 발표가 왜곡된 것임을 주장하는 발표가 잇따랐다.
다카오 마츠마라 일본 게이오대 명예교수는 노근리 사건 : 대량학살 명령이 하달됐는가라는 논문에서 미국문서기록관리청(NARA)에 보관된 기록을 근거로 노근리 학살을 지시한 장본인으로 미군 제5기병연대 제2대대장을 지목했다.
02:00 7월26일 …아무도 무장하지 않았으며 우리는 사격을 가하지 않았다. 02:10 …공격하라. 반복한다. 즉시 공격하라(1950년 7월26일 제5기병대 제2대대장의 난민통제 지시 중)
사건 당시의 미군 배치상황과 발생시간 등을 고려할 때 노근리에서 민간인을 사살한 부대는 제5기병연대 제2대대로 추정된다는 것.
노근리 사건 발생 당시 제5기병연대 제2대대는 노근리 인근 주곡리에 주둔했다. 노근리 사건의 희생자가 바로 주곡리 사람들이다. 산골로 피신했던 주곡리 사람들은 26일 밤 마을로 내려오다 미군에 의해 사살됐다.
제2대대의 주둔지와 자료에 기록된 오전 2시라는 시간은 노근리 사건의 발생장소 및 시간과 일치한다.
다카오 교수는 "이 자료에 기록된 비무장 난민은 노근리의 희생자인 것으로 보인다"며 "미군은 난민이 무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공격을 가했다"고 비판했다.
김구현 한국정치연구소 전 선임연구원과 정구도 노근리평화연구소장은 한국 전쟁기의 미 제8군 피난민 통제정책이라는 발표에서 1ㆍ4후퇴기 피난민에 대한 미군의 발포명령을 기록한 문건들을 소개했다.
두 학자는 미국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유엔군사령부(UNC), 극동군 사령부(FEC), 연합군최고사령부(SCAP) 등의 군사문서 속에서 민간인 사격 명령의 증거를 찾아냈다.
당신들은 관할지역에서 모든 주민들의 이동을 통제할 수 있는 완벽한 권한을 가진다. 아울러 그들에 대해 발사 및 폭격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미10군단 발신문서 1951년 1월 3일)
피난민은 아군지역으로 들어오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피난민 무리가 우군 진영에 도달하는 것을 흩트리기 위해 적극적 방식을 취할 것(UNC, SCAP, FEC 총사령부 기록)
아군의 전선에 들어오는 모든 피난민에 필요하다면 발포하라. 이를 위해 박격포 등 포격도 사용가능하다. 밤에 하얀 옷을 입고 돌아다니는 민간인에게 발포할 것(1950년 12월 2, 30일 미 제1기병사단 전투일지 중)
김구현 전 연구원은 "공식적인 민간인 통제정책은 검색을 거친 뒤 이동을 허용하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피난민에게 발포할 것을 명령한 기록이 수많은 자료에서 확인된다"고 주장했다.
또 2006년 5월 피난민에 대한 사격명령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존 무초(6ㆍ25 당시 주한미국 대사)의 서한을 발굴ㆍ공개한 사르 콘웨이 란츠 박사는 무초 서한의 의미를 설명하고 미군의 사살명령을 증명하는 근거들을 제시했다.
무초 서한에는 ▲전단지를 뿌려 피난민의 이동을 경고한다 ▲피난민이 전선 북쪽에서 나타난다면 위협사격을 한다 ▲그래도 계속 이동한다면 피난민에게 사격을 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밖에 2006년 노근리 관련 논문으로 미국 템플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유타대 교수로 재직 중인 최수희 교수가 양가적 수사장치로서의 모성을 발표했으며 한국전쟁 초기 미 공군 전투기의 전선부근 민간인 공격양상과 노근리 사건의 위상(김태우ㆍ서울대), 제2차 세계대전기 독일 정규군의 유대인 학살과 과거사 극복(최호근ㆍ고려대) 등의 논문도 소개됐다.
한편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한국전쟁의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 유가족들이 직접 개최하는 보기 드문 사례로 정구도 노근리평화연구소장이 십여 년을 뛰어다닌 결과다.
정 소장의 형과 누나 역시 미군의 총에 사망했으며 아버지 정은용(86) 노근리사건희생자유족회장은 1994년 사건 당시의 한을 담은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발표했다.
아버지의 집필작업을 도운 것을 계기로 노근리 사건 연구에 뛰어든 정 소장은 최근까지 노근리 사건에 관한 4편의 논문을 쓰고 한 권의 책을 냈으며, 노근리평화연구소를 만들어 진상규명에 나서고 있다.
kind3@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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