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빈의 허란촌, 체포 5년만에 폐허로 전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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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양=연합뉴스) 조계창 특파원 = 중국 선양(瀋陽)의 명물이 폐허로 변하는데는 불과 10년도 걸리지 않았다.

지난 2002년 9월 북한의 신의주 특구장관으로 임명됐다 경제사범으로 중국 공안에 체포된 양빈(楊斌)이 심혈을 기울여 설립한 허란(和蘭)촌.

중국에서 온실사업으로 주가를 높였던 양빈은 랴오닝(遼寧)성의 투자유치에 따라 1999년초 선양시 교외에 위치한 샤오한(小韓)촌의 토지를 확보해 현대식 대형온실을 중심으로 농업, 관광, 주거 등이 결합한 허란촌을 건립하기 시작했다.

허란촌은 3천30만무(畝.약220만㎡)의 광활한 토지에 세워졌다. 널찍한 도로 양 옆으로 네덜란드풍의 건물이 즐비하게 들어섰고 각 건물 앞에는 작은 보트가 다닐 수 있도록 운하까지 파놓았다. 또 운하 중간 중간에는 도개식 다리와 풍차도 설치됐다.

허란촌 입구에서 500m 정도 걸어 들어가면 양빈이 자신의 사무실로 사용했던 궁전식 건물과 호텔들이 나타난다. 이들 건물 앞에는 인공 연못까지 만들어져 중국이 아닌 네덜란드의 한 작은 도시에 와 있는 듯한 착각까지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운동장처럼 드넓은 대형온실에는 각종 야채와 꽃들이 싱그러운 자태를 뽐내며 자라고 있었다.

이런 광경은 양빈이 체포되기 전인 2002년 10월초까지 선양 시민에게는 현실 속의 환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로부터 5년의 세월이 흐른 15일 기자가 방문한 허란촌은 당시의 영화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페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허란촌에서 가장 먼저 생겼다는 대형온 실은 텅 비어 있었고 주변에는 온통 잡초만 자라고 있었다.

세련된 자태를 자랑했던 네덜란드풍의 건물들은 굳게 문이 잠긴 채 먼지만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허란촌 광장에 서있는 대형 풍차는 오랜 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페인트가 군데군데 벗겨져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한 주민은 "허란촌에서는 일반 아파트 가격의 3분의 1 정도인 1㎡당 1천100위안(약14만원) 안팎에 주택 거래가 이뤄지고는 있지만 권리증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려는 사람은 거의 없는 형편"이라고 귀띔했다.

그에게 양빈이 푸순(撫順) 교도소에서 진저우(錦州) 교도소로 이감된 뒤 석방돼 가택연금에 들어갔다는 일각의 풍설에 대해 물었지만 "18년형을 받은 사람이 그렇게 빨리 풀려날 수 있겠느냐. 적어도 올해 들어서는 허란촌에 그가 나타났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나마 허란촌에서 사람의 온기를 불어 넣어주고 있는 모습은 인공 연못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낚시에 열중하고 있는 주민들이었다. 이들은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맞으며 분주하게 낚싯대를 물속에 던져 넣고 있었다.

허란촌 구내에 있는 화훼시장은 옹색한 규모였지만 손님과 업주들의 흥정이 끊이지 않고 나름대로 활기를 띠고 있었다.

허란촌 주변을 둘러싼 토지에서는 현대식 아파트가 들어서는 등 부동산 개발이 한창이었다.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허란촌 정문 앞에서는 아파트로 연결될 난방용 온수 파이프를 연결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주민들은 도시가 확장되고 있는 만큼 조만간 시정부나 다른 기업에서 허란촌을 인수해 다시 개발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희망섞인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과거 농토였던 허란촌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조선족 박모씨는 "양빈이 조선(북한)에 투자한다고 나서지만 않았어도 허란촌은 지금쯤 엄청나게 발전해 선양에서도 이름난 명소가 됐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phillif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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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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