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클랩튼의 라이브영상

2005-09-15 アップロード · 8,776 視聴

Eric Clapton의 Wonderful Tonight

60년대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x)와 더불어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 살아있는 전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당대 영국에서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던 블루스 그룹 야드버즈(Yardbirds), 존 메이욜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즈(John Mayall and the Bluesbreakers), 사이키델릭 블루스 록 그룹 크림(Cream)등에서 발군의 연주 실력을 발휘해 왔고,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존경받는 최고의 뮤지션이다.

14살 생일에 조부모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유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의 주법을 답습하면서 역량을 키워간 에릭은, 이후 대학을 자퇴하고 지역 클럽이나 선술집에서 연주하며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모색한다.
한때 로컬 R&B 밴드인 루스터(Rooster)에서 연주생활을 하던 그는 63년 R&B/록 밴드인 야드버즈에 참여하여 두 장의 성공적인 앨범 [Five live Yardbirds](64), [For Your Love](65)를 발매한 후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그룹을 탈퇴한다.
이후 존 메이욜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즈에 조인한 에릭은 이 그룹에서 슬로우핸드(slowhand)라는 애칭을 얻고 기타 연주에 있어 신과 같다라는 격찬을 들으면서 이미 영국 블루스계의 거장으로 인정받던 메이욜을 능가하게 되었고, 그룹이 데카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66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으로 UK 차트 6위에 올랐지만 메이욜의 주도적인 행동에 실망한 그는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 드러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와 함께 그룹을 탈퇴, 새로운 블루스 록 그룹인 크림을 결성한다.
재능있는 뮤지션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이들은 결성 당시 이미 열성팬들을 확보하였으며, [Fresh Cream](66) 발매 이후 미국 순회공연을 가지면서 즉흥 연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대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Disraeli Gears and Wheel of Fire]의 'White Room', 'Sunshine of Your Love' 같은 라디오 히트곡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플래티넘을 기록한 크림은 에릭과 잭 사이에 음악적인 갈등이 불거지면서 68년 결국 해체를 선언, 당대 최고로 영향력 있던 이 그룹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에릭은 곧 진저와 릭 그레치(Rick Grech, 베이스),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키보드)와 함께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결성해 69년 6월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10만 명의 관중 앞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함으로써 공식 데뷔한다.
이어 발표한 셀프타이틀의 데뷔 앨범이 빅 히트를 기록하고 매진 사태를 빚을 정도로 성공적인 미국 순회공연을 마쳤지만, 이들은 구성원간의 음악적 성향의 충돌로 해체하게 된다.

한동안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에릭은 69년 토론토에서 개최된 존 레논(John Lennon)의 자선공연에 참여하여 그의 우노 밴드에서 연주생활을 하게 된다.
70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 'After Midnight'로 인기를 모으며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각광받았지만, 솔로 주자로 활동하기를 주저한 에릭은 친구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All Things Must Pass] 앨범 작업을 돕는다.
그러나 조지의 부인인 패티(Patti)와 사랑에 빠지면서 에릭은 마약을 시작하게 되고, 한동안 음악과 담을 쌓은 채 약물중독으로 침체기에 빠진다.

72년 여러 밴드 시절의 히트곡을 모은 [The History of Eric Clapton]으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게 된 에릭은 73년 런던 레인보우 극장에서 컴백 공연을 갖고 라이브 실황 앨범 [Eric Clapton's Rainbow Concert]를 발매한다.
74년 [461 Ocean Boulevard]를 발표, 넘버원 싱글 'I Shot the Sheriff'로 기타 연주가 아닌 자신의 보컬을 앞세우게 된 그는 [There's One in Every Crowd](75), [No Reason to Cry](76), [Slowhand](77), [Backless](77)를 발표하며 꾸준히 차트를 점유함으로써 그 명성을 공고히 했다.

81년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은 그는 83년 블루스 성향의 [Money and Cigarettes]를 발매한 후 전문 프로듀서와 작곡가, 백 밴드 등의 참여로 이루어진 앨범 [Behind the Sun](85)으로 히트를 거둔다.
86년 8월 이탈리아 출신 모델과의 사이에서 첫 아들 코너(Connor)가 출생하자 그는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타니 터너(Tina Turner)로부터 받은 곡들이 수록된 [August]를 발매한다.

89년 [Journeyman]으로 자신의 초창기 블루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스타일을 구사하며 활발한 활동을 재기한 에릭은 91년 사랑하는 아들이 아파트에서 추락사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92년 영화 [Rush]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게 된 에릭은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곡 'Tears in Heaven'을 발표했고, MTV 언플러그드에 모습을 드러내어 'Tears in Heaven'을 부르며 많은 팝 팬들에게 감정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뒤이어 발매된 [Unplugged](92)는 그에게 6개의 그래미상을 안겨주었고, 96년까지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때 주춤했던 스타덤을 다시 회복한 에릭은 94년 그가 오랫동안 녹음하고 싶어한 블루스 스탠다드 곡들로 이루어진 앨범 [From the Cradle]을 제작, 4개의 그래미상을 획득한다.
96년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작곡한 영화 [Phenomenon]의 사운드트랙을 불러 또 하나의 그래미상을 추가한 에릭은 97년 프로듀서이자 키보디스트인 사이먼 클리미에(Simon Climie)와 뉴 에이지/트립합(trip-hop) 듀오를 결성했고, 엑스 샘플(X-sample)이라는 가명으로 테크노 앨범 [Retail Therapy]를 발표한다.

98년 [Pilgrim]을 발표하여 'My Father's Eyes'로 차트 10위권 안에 진입함으로써 식지 않은 인기를 확인한 에릭 클랩튼은 35년 이상 최고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로, AOR(Adult-Oriented Rock) 주자로 뛰어난 테크닉과 연주 솜씨를 발휘하며 롱런을 구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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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시
2015.03.14 10:35共感(0)  |  お届け
환상 그 자체야 ///삭제
yali0343
2008.10.04 14:31共感(0)  |  お届け
멋지네요~~^^*삭제
ㅋㅋ
2008.09.21 19:47共感(0)  |  お届け
Eric Clapton의 Wonderful Tonight

60년대 지미 헨드릭스(Jimmy Hendrix)와 더불어 최고의 록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는 살아있는 전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은 당대 영국에서 최고의 명성을 구가했던 블루스 그룹 야드버즈(Yardbirds), 존 메이욜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즈(John Mayall and the Bluesbreakers), 사이키델릭 블루스 록 그룹 크림(Cream)등에서 발군의 연주 실력을 발휘해 왔고, 솔로 아티스트로서도 존경받는 최고의 뮤지션이다.

14살 생일에 조부모로부터 기타를 선물 받고 유명한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의 주법을 답습하면서 역량을 키워간 에릭은, 이후 대학을 자퇴하고 지역 클럽이나 선술집에서 연주하며 전문 음악인으로서의 길을 모색한다.
한때 로컬 R&B 밴드인 루스터(Rooster)에서 연주생활을 하던 그는 63년 R&B/록 밴드인 야드버즈에 참여하여 두 장의 성공적인 앨범 [Five live Yardbirds](64), [For Your Love](65)를 발매한 후 음악적인 견해 차이로 그룹을 탈퇴한다.
이후 존 메이욜 앤 더 블루스브레이커즈에 조인한 에릭은 이 그룹에서 슬로우핸드(slowhand)라는 애칭을 얻고 기타 연주에 있어 신과 같다라는 격찬을 들으면서 이미 영국 블루스계의 거장으로 인정받던 메이욜을 능가하게 되었고, 그룹이 데카 레코드사와 계약을 맺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된다.

66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으로 UK 차트 6위에 올랐지만 메이욜의 주도적인 행동에 실망한 그는 베이시스트 잭 브루스(Jack Bruce), 드러머 진저 베이커(Ginger Baker)와 함께 그룹을 탈퇴, 새로운 블루스 록 그룹인 크림을 결성한다.
재능있는 뮤지션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이들은 결성 당시 이미 열성팬들을 확보하였으며, [Fresh Cream](66) 발매 이후 미국 순회공연을 가지면서 즉흥 연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대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Disraeli Gears and Wheel of Fire]의 'White Room', 'Sunshine of Your Love' 같은 라디오 히트곡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고 플래티넘을 기록한 크림은 에릭과 잭 사이에 음악적인 갈등이 불거지면서 68년 결국 해체를 선언, 당대 최고로 영향력 있던 이 그룹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에릭은 곧 진저와 릭 그레치(Rick Grech, 베이스), 스티브 윈우드(Steve Winwood, 키보드)와 함께 블라인드 페이스(Blind Faith)를 결성해 69년 6월 런던 하이드 파크에서 10만 명의 관중 앞에서 무료 콘서트를 개최함으로써 공식 데뷔한다.
이어 발표한 셀프타이틀의 데뷔 앨범이 빅 히트를 기록하고 매진 사태를 빚을 정도로 성공적인 미국 순회공연을 마쳤지만, 이들은 구성원간의 음악적 성향의 충돌로 해체하게 된다.

한동안 세션 뮤지션으로 활동하던 에릭은 69년 토론토에서 개최된 존 레논(John Lennon)의 자선공연에 참여하여 그의 우노 밴드에서 연주생활을 하게 된다.
70년 셀프 타이틀의 데뷔 앨범을 발표, 'After Midnight'로 인기를 모으며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각광받았지만, 솔로 주자로 활동하기를 주저한 에릭은 친구 조지 해리슨(George Harrison)의 [All Things Must Pass] 앨범 작업을 돕는다.
그러나 조지의 부인인 패티(Patti)와 사랑에 빠지면서 에릭은 마약을 시작하게 되고, 한동안 음악과 담을 쌓은 채 약물중독으로 침체기에 빠진다.

72년 여러 밴드 시절의 히트곡을 모은 [The History of Eric Clapton]으로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게 된 에릭은 73년 런던 레인보우 극장에서 컴백 공연을 갖고 라이브 실황 앨범 [Eric Clapton's Rainbow Concert]를 발매한다.
74년 [461 Ocean Boulevard]를 발표, 넘버원 싱글 'I Shot the Sheriff'로 기타 연주가 아닌 자신의 보컬을 앞세우게 된 그는 [There's One in Every Crowd](75), [No Reason to Cry](76), [Slowhand](77), [Backless](77)를 발표하며 꾸준히 차트를 점유함으로써 그 명성을 공고히 했다.

81년 워너 브라더스와 계약을 맺은 그는 83년 블루스 성향의 [Money and Cigarettes]를 발매한 후 전문 프로듀서와 작곡가, 백 밴드 등의 참여로 이루어진 앨범 [Behind the Sun](85)으로 히트를 거둔다.
86년 8월 이탈리아 출신 모델과의 사이에서 첫 아들 코너(Connor)가 출생하자 그는 필 콜린스(Phil Collins)와 타니 터너(Tina Turner)로부터 받은 곡들이 수록된 [August]를 발매한다.

89년 [Journeyman]으로 자신의 초창기 블루스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스타일을 구사하며 활발한 활동을 재기한 에릭은 91년 사랑하는 아들이 아파트에서 추락사하는 비운을 겪게 된다.
92년 영화 [Rush]의 사운드트랙 작업을 맡게 된 에릭은 아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담은 곡 'Tears in Heaven'을 발표했고, MTV 언플러그드에 모습을 드러내어 'Tears in Heaven'을 부르며 많은 팝 팬들에게 감정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켰다.
뒤이어 발매된 [Unplugged](92)는 그에게 6개의 그래미상을 안겨주었고, 96년까지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한때 주춤했던 스타덤을 다시 회복한 에릭은 94년 그가 오랫동안 녹음하고 싶어한 블루스 스탠다드 곡들로 이루어진 앨범 [From the Cradle]을 제작, 4개의 그래미상을 획득한다.
96년 베이비페이스(Babyface)가 작곡한 영화 [Phenomenon]의 사운드트랙을 불러 또 하나의 그래미상을 추가한 에릭은 97년 프로듀서이자 키보디스트인 사이먼 클리미에(Simon Climie)와 뉴 에이지/트립합(trip-hop) 듀오를 결성했고, 엑스 샘플(X-sample)이라는 가명으로 테크노 앨범 [Retail Therapy]를 발표한다.

98년 [Pilgrim]을 발표하여 'My Father's Eyes'로 차트 10위권 안에 진입함으로써 식지 않은 인기를 확인한 에릭 클랩튼은 35년 이상 최고의 블루스 록 기타리스트로, AOR(Adult-Oriented Rock) 주자로 뛰어난 테크닉과 연주 솜씨를 발휘하며 롱런을 구가하고 있다.삭제
♡후르바♡
2007.01.15 01:09共感(0)  |  お届け
감사해요^^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삭제
옥방석
2006.11.16 11:51共感(0)  |  お届け
넘좋아하는연주..담아갑니다....삭제
서배코
2006.10.22 02:02共感(0)  |  お届け
영상담아갈게요 게시불 재밌었습니~^^다삭제
★카오스★
2006.10.20 05:53共感(0)  |  お届け
영상담아갑니다 ^^삭제
L.Q.L
2006.10.19 09:43共感(0)  |  お届け
베이비페이스삭제
멀라12
2006.10.14 03:56共感(0)  |  お届け
영상 감사히 담아 갑니다..삭제
hcm1329
2006.10.07 12:09共感(0)  |  お届け
감사히퍼가겠습니다~~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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