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믿음 (2005-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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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4잘 18절 ~22절

성경에“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한 사람 아브라함에게 주목하게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교에서도 그들의 조상을 아브라함이라고 말하고, 회교도에서도 아브라함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의 어떤 것이 하나님의 주목을 끌어 그를 선택하게 했으며, 또 무엇이 많은 사람들이 본받고 싶고, 그에게 뿌리를 둔 민족이라고 말하고 싶게 만드는 것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알아보고 서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믿음

아브라함은 하란을 떠날 때 조카 롯과 동행했습니다. 이들은 함께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복을 받았습니다.
소 떼와 양들이 떼를 이루고 노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 롯의 가축의 노비들과 아브라함의 가축의 노비들이 서로 싸움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와 함께 동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조카 롯을 불러 서로 헤어질 것을 권면했습니다(창 13:8~9).
그리고 아브라함은 먼저 조카 롯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롯은 요단 온 들과 물이 넉넉한 온 땅의 소알까지, 그리고 아름다운 초원의 땅이요, 야웨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습니다. 멸망받기 전의 소돔과 고모라는 당시 상업의 도시요 무역의 도시였으며 풍요의 땅이었습니다.
반면 아브라함이 가야할 땅은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땅, 가축을 돌보기 힘든 광야였습니다.
그런데 이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창 13:14~15).
하나님은 현실을 바라보는 아브라함의 시각을 바꿔주셨습니다. 바랄 수 없는 현실에서 약속의 말씀을 통해 ‘큰 민족’이 되고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그 결과 부정적인 환경을 바라봤던 아브라함은 긍정적인 미래를 바라보며 소망과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것이 ‘믿음의 눈’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본 것을 열 사람의 정탐꾼은 보지 못했습니다. 신앙인은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 역시 이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소망을 바라고 나면, 그 바라는 대로, 그 바라보는 믿음대로 하나님은 역사해 주십니다.
바라보는 그 순간에 좌절과 낙심이 되고, 안 되는 것뿐이고, 바라보는 그 순간에 절망이 찾아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바라보는 그것으로 미리 결정하지 말고, 그 이면에 능력의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 함께 하시는 하나님, 나를 도와주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을 갖는 성도가 됩시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약속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을 바로 바라보는 성도가 됩시다.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믿음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 그는 갈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떠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은 첩이었던 하갈과 그녀의 소생이요, 자신의 아들인 이스마엘을 광야로 ‘내어 쫓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순종했고(창 21:10),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에도 순종했습니다(창 22:1).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믿음에는 순종이 요구됩니다.
사라의 몸은 죽은 것 같았습니다. 이미 경수도 끊어져 여자로서의 역할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또한 아브라함도 나이 많아 노쇠한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절대로 믿음만은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았을 때에 그들은 이삭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믿음이 약해지면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고, 현실과 형편을 바라보면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뒤로 물러설 때가 있습니다. 낙심이 되고, 실의에 빠지며,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도 우리는 절대로 믿음만은 약해지지 말아야 합니다. 약해지지 않는 그 믿음 위에 역사와 기적은 일어납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버릴 줄 아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그는‘본토를 버리고, 친척을 버리고, 아비 집을 버리고 떠나라’는 말씀에 순종해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모든 것을 버린 것은 대단한 모험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이름을 바꾸라’고 하시자 이름도 바꿨습니다(창 17:5 이하).‘할례를 행하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자 모든 남자에게, 심지어는 돈으로 사온 모든 이방 사람들에게까지도 할례를 행했습니다(창 17:9~14, 23~27).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믿을 수 없는 것을 믿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이처럼 그가 자신을 부인하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약속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을 때 복의 근원이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믿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들 이삭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얻은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바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 명령을 순종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이삭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자식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말씀에 순종해 이삭과 함께 하나님의 산으로 갔습니다.
아들 이삭이“아버지, 제물을 태울 불도 있고, 나무도 있는데, 번제할 어린양은 어디 있습니까?”라고 물었을 때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땠을 지 미뤄 짐작하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이때도 아브라함은 동요하는 기색 없이 “아들아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창 22:8)고 대답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러한 태도는 그가 할 수 없는 것을 행동에 옮기는 믿음의 사람이었으며,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었음을 증거 합니다. 또 아브라함이 자신의 어떤 것도 하나님께는 아끼지 않는 신앙을 가졌음을 보여줍니다.
우리도 이처럼 불가능 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믿음으로 행동에 옮기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며 인간의 생각은 모두 버리고, 우리의 소중한 것은 물론 나 자신까지도 아끼지 않고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가는 길을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찾는 길임을 알았기 때문에(히 11:8) 순종했습니다. 또한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으며(창 12:7)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창 13:18, 22:9).
아브라함은 예배 중심의 삶을 사는 믿음의 사람, 변화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소망을 품을 수 있었으며,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각은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예배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를 힘들게 만드는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축복의 환경으로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소유자가 됩시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으며, 할 수 없는 중에 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함으로써 하나님이 이를 의로 여기셨듯이 우리도 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 아브라함이 누렸던 복을 삶 속에서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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